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살펴본 사람은 ‘한(恨)’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한(恨)은 원통함, 억울함 등을 나타내는 한자어입니다. 부정성의 경험이란 모든 인류 역사 속에 있어온 것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겪은 한은 그 강도에 있어서 분명 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6.25내전, 군사독재, 경제위기, 각종 사고와 인재 등 한민족이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한(恨)을 감추기 위해 포장한 자기 위안에 불과했습니다. 거대한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위 계급만 체감할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수천만의 국민들은 여전히 생활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수의 상위 계급은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고, 윤리와 정의를 교묘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무시합니다.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부당거래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확산시킵니다. 상위 계급으로 진입하길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에 물들어 갑니다. 소위 관례 및 관행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전반적으로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내가 당한 일이 아니면 상관없다”가 됩니다. 이웃과 민족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시 된 것입니다. 자기의 손해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웃의 아픔에는 무덤덤합니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4월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며, 기자는 다음과 같은 7가지 공감능력을 잃은 반응을 발견했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이다.
일부에선 세월호 사건을 심판론의 관점에서 이야기 합니다. 대한민국이 타락하고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자는 의문점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범죄한 당사자들을 심판하시지 않고, 애매하게 배에 탑승한 사람들을 심판하셨을까요? 그 배에 탄 사람들이 특별히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2. 내가 혹은 내 주변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
“나도 잘못했으면 그 배에 탈 뻔했는데, 천만다행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종 종 보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무서워서 여행 다니지 말아야 겠다.
자기가 여행을 다니지 않거나, 또는 자기의 자녀를 여행 보내지 않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지구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 있을까요?
4. 인간은 자기 앞길을 알 수 없으니, 늘 대비하자.
“그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될 줄 알았겠느냐? 그러니 우리도 잘 대비하자”라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민감하니까 거론하지 않겠지만, 아마 몇 년 후엔 보험회사 같은 데서 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사례로 활용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논리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건 자체에 대해선 직면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무관심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다.
종 종, 여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다.”고 말하며, 박 대통령을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기자는 되묻곤 합니다. “죽은 아이들, 그리고 그 유가족이 불쌍합니까? 아니면 박 대통령이 불쌍합니까?”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고 말해버리면 아무도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집니다. 박 대통령이라고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과 세월호 사건 피해 당사자들을 연관시키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6. 지겹다.
기자가 들었던 반응 중에 가장 많은 반응이 바로 이것입니다. 처음에는 동조하고, 공감했는데, 이렇게까지 계속 이야기하니 지겹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의 진행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면, 왜 이렇게 계속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기의 가족이 죽었을 지라도 지겹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결국 지겹다는 말은 내가 겪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7. 최선을 다한 것이다.
“정부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렇게 비판하는 네가 대통령 해보라.(네가 구조대 해봐라)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겠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역시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특히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서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알게 됩니다. 기자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만약 그 배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람 중에 박 대통령이 있었어도 그렇게 대처했을까요? 혹은 박 대통령의 친척이라는 연예인 은 모씨가 있었어도 그렇게 대처했을까요? 최선을 다했다는 건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하는 말입니까?”
결과적으로 이러한 반응은 대한민국이 공감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혹시 알게 모르게 이 7가지 중에 취한 반응이 있었다면,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인간미가 없어져가는 세상’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그 인간미가 없어져 가는 데 나 또한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이 필요합니다. 한(恨)민족이 진정 한(韓)민족이 되기 위해선 공감능력이 필요합니다.
강민석 기자(kms64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