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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절 연휴를 앞두고 마음이 설렜다.
나흘간이나 계속되는 휴식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부푼 마음 때문이었다.
추수 감사절 날에는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두었던 구석의 먼지들을 다 털어내는 대청소를 하고, 이불 빨래도 하면서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남편이 풀러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ITS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강의를 하면서 알게 된 교수님이 남편에게 담임 목회를 해 볼 마음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학위를 받기까지 긴 시간을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고, 강의를 함으로써 본인이 계속 더 성장할 수 있음도 감사 하지만, 원래 목회에 대한 열정으로 목회자의 길을 들어 선 남편으로서야 당연히 YES라고 대답 하였다.
그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LA 근처의 Northridge라는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시작 하게 되었다. 그 교회로 가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모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사역하게 될 교회에 그 사모님이 잘 아는 집사님이 계신다며 그 가정에 대해서 귀띔을 해 주셨다. 남편의 뒤를 따라 그 교회에 가서 첫 인사를 드리고 서먹서먹하게 예배를 드렸다.
식사를 하면서 교제 시간이 되었다. 어정쩡하게 있는 나에게 어떤 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제가 한 사모랑 같이 공부하고 있는 조 집사에요.”장로님과 교회 남자 직분자들은 모두 남편과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머지 모여 앉아 계시는 성도님들의 관심과 시선이 나에게 쏠려 있는 순간에 나로서는 분출구를 찾은 셈이었다.
그 집사님은 석사 과정에서 도서관학과를 공부하면서, 남편이 강의를 나가는 ITS 도서관의 사서원으로 근무하는 분이었다.
마침 남편과 나이도 같고, 나랑 같이 공부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는 점이랑, 그 집 큰 아이랑 우리 집 아들이 동갑내기라는 등등의 공통점을 하나씩 찾아 나가면서 그 집사님의 부인, Karen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 가정과 조 집사님과의 교제가 시작 되었다. 교제가 조금씩 깊어지자 조집사님은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시며 기도 부탁을 하셨다.
조 집사님의 부인은 CPA이신데, 초등학교 때 미국에 오셔서 일반적인 의사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설교나 전문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한국말 이해가 쉽지 않으신 분이었다.
게다가 대학교 때 미국에 오신 조집사님과 사고 방식의 차이도 있고,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면서 남편으로서나 아빠로서 기대치 만큼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부인과 자주 티격태격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별 신앙이 없는 부인이 주일만 되면 남편에게 괜한 짜증을 내다가 결국 예배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교회를 간다 안 간다 하며 부부 싸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 성도님들 대부분이 연세가 많아서 마음 맞는 사람도 없고 교회가 재미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오기 전에는 말 통하고 젊은 사람들이 있는 미국 교회에라도 가 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두 번 같이 따라 가더니만 교회 안 가겠다는 증세는 여전해서 계속 교회를 빠지고 있었는데, 한 사모를 통해 우리 목사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는 다시 Northridge 교회로 나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와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 많고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가정은 계속 조 집사님 댁을 아지트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Northridge가 우리가 살던 파세데나에서 거의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관계로 교회 모임이 토요일이나 주일 늦게까지 있을 경우에는 그 집사님 댁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과 조집사님은 자주 테니스를 치러 나가곤 했고, 그 사이에 Karen과 나는 애 키우는 문제, 세상 살아가는 일 등, 이런 저런 얘기를 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두 분의 관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Karen 자신은 직장 생활로 너무 바쁘고 분주한데, 남편은 공부라는 짐으로 인해 자신을 좀 더 도와주고 이해 해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유가 없으면서도 주일 날 예배 드리러 갈 시간은 있고, 교회 일에 참견할 힘이 있는 남편이 그냥 밉고 싫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이 아름다운 가정이 부부간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며 신앙 문제로 도화선이 되어서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이 두 부부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여전히 재미가 없고 목사님의 설교가 제대로 이해가 안 된다고 불평 하면서도 Karen은 계속 교회를 나왔고, 조 집사님은 젊음의 열정으로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잘 감당해 내셨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역 기간을 마치고 베이크스필드로 목회지를 옮기게 되자, 조 집사님이 제일 섭섭해 하셨다. “목사님이 가시면 이제 우리 부부 마음 붙일 데가 없어요.” Karen도 그 동안의 끈끈한 인간적인 정 때문인지 계속 연락 하자며 못내 아쉬워했다. 조 집사님은 자신이 풀러 신학교의 사서로 취직하게 된 일, 단기 선교를 다녀 온 일 등 이멜로 근황을 알려주셨고, 우리 부부의 그 가정을 위한 기도도 계속 되었다. 작년에 LA를 방문 할 일이 생겨 조 집사님 댁에 묶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놀라운 일이! 두 부부가 완전히 변해져 있었다. 예전에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평으로 끝 없는 험담이 나오더니, 우리 부부 앞에서 계속 서로를 칭찬하고 높이며 서로에게 감사를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Karen이 매 주 금요일이면 목원들에게 집을 제공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여목자가 되어서도 불평하지 않으며 잘 섬기고 있었다. 이런 변화된 모습으로 인해 우리 부부는 LA 에서 몬트레이로 올라 오는 발걸음이 기쁨과 감사로 넘쳤다. 하나님은 정말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 그 증인이 되는 기쁨이야 말로 목회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임을 알았다.
222. 마지막 입니다
220. 친구 열 명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