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3무가 찾아오는 때를 조심하라고했다. 의욕없이 무기력한 상태, 무슨 일에도 관심이 없는 상태, 어떤 일에도감동받지 않는 덤덤한 상태, 바로 감수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3무라고한단다.

아이들이 떠나고 노년기에 접어든우리부부에게도 가끔 3 무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일 보는 그사람이 그 사람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대동소이하게 지나가던 차에, 손녀 딸 들이 찾아 오는 여름방학은 태풍이 온다는 소식만큼 우리 집을 긴장시키고 분주하게 만든다.

이번 여름에도 그런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방학이 되면 막내 아들과 며느리는 아이들을 나에게 맡기고 둘만의 휴가를 떠난다.

결혼하자마자 7년동안에 아이 넷을 낳았으니 언제 편안하게 둘 만의시간을 가질 틈도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기쁘게 그들의 휴가기간을 돕는다.

다행(?)이라고 할까, 내 차에는 아이를 네명씩 태우고 다닐 수 있는 자리가없어서 막내는 외갓집으로 보내고 셋만 내 차지가 되었다.

나도 어린시절 방학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사시는 시골에서 지냈다.

할머니께서는 아침마다 내가 좋아하는 팥죽을 사오셨다.

팥죽을 담은 따끈한 놋그릇을 이불밑에 묻어 두고 내가 잠에서 깨면 할머니는 나와 팥죽 그릇을 번갈아 쓰다듬으셨다.

저녁 밥솥 안에는 시퍼런 쑥개떡이 나를 위해 밥위에서 익어가는 냄새를풍기고 있었다.

할머니집은 나의 입맛의 고향이기도하였다.

나의 할머니처럼 나도 할머니만이 줄수 있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쉼터를 손녀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남편은 요즘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을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고 적당히 알아서 사주라고 조언 하지만할머니 할아버지는 부모가 아니라서 조금은 파격적인 것이 더좋다고 나는생각한다.

나의 기억 속에는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파란 유리알이 박힌 반지가 있다.

전쟁이 지나간 시골 구멍가게에 어린아이들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는 건빵이나 눈깔 사탕, 박하 사탕, 그 정도였는데 그 날 내 눈에는 파란 구슬이 박혀있는 반지가 보였다.

당장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한복 마고자자락을 들치고 바지 옆에 매달린 주머니를 들어서끈을 풀고 백환을 꺼내 주시던 장면을나는 슬로모션으로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면 허락되지않는 기억들을 나도 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여섯살, 일곱살 아홉살짜리 손녀 셋을 데리고 쿠키를 만들고 컵케익을 만들었다.

부엌은 어질러지고 달걀을 잘못 깨서바닥에 쏟아져도 엄마는 소리를 지르겠지만 할머니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할 수 있다.

Horse Academy에 가서 말을 타는 것도 배우고 어떻게 돌보는 것도 배웠다.

말이 패퍼민트 캔디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고 포니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말처럼 크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밤에 잘때도 한방에서 함께 잤다.

손녀들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할머니는 손녀들의 생각을듣고 싶어서 함께 잔다.

작년까지만 해도 밤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서 토끼와 거북이, 삼년 고개같은 이야기가 단골로 올랐는데 올해는 다른 한국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흥부놀부, 견우직녀, 호랑이에게서 도망가다가 하늘로 줄을 타고 올라가서 해와 달이된 오누이의 이야기가 새로운 메뉴였다.

그리고 잠들기전 마지막으로 우리는기도를 했다.

비록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다.

뉴스에서 본 자연재앙의 두려움도 있고, 나이가 많아 늙으면 죽는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셋이 돌아가면서 고민을 털어 놓는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의 가슴에 평안을 주신다고 하였더니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을

또 봇물처럼 쏟아낸다.

자기네 학교에서는“O my GOD”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GOD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함께 있음을 감사드리고 학교에서“O my GOD”라는 말도 쓸 수 있는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자연 재앙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자라나기를 기도하고 모두가 아멘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한 가지를 더 기도하였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마주 치게될모든 시험에서 이기게 하시고, 악에서건져 주시옵소서.”

아들만 둘을 둔 큰아들이 전화로 묻는다.

손녀 딸들과 지내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나는 몸은 힘들고 집은 지저분하지만마음만은 사랑으로 가득차서 활기를 채우고 있다 했더니 엄마가 이처럼 좋아하는걸 보니 자기 네 두아들도 보내고 싶다고, 8월초에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3무에서 헤매던 우리 부부는 이제 3무를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