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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가서 숭늉 떠 와라”
밥 먹다가 일어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나한테 아버지께서 말씀 하셨다.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 퇴근하고 돌아 오실 때는 밖에 나가 흙투성이가 되였었다가도 집에 들어 와 씻고, 옷깃을 여미고 들어 오시는 아버지의 단장과 모자를 받아 드려야 했던 우리 형제들의 어린 시절. 아버지 말씀이면 그대로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우리 형제들은 나를 바라본다. 무서운 아버지의 엄명이니, 숭늉 떠다 드리고 밥 숟갈 놓아버리는 나를 아버지께서는 옆방으로 부르신다.
"너 지금 아버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눈물이 핑 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냥 속으로 - 일하는 언니도 있고, 젖 엄마도 있는데 왜 내가 물을 떠 와야 해요 - 하고 입술을 깨문다.
아버지는 조용히 그러나 나를 지긋이 쳐다 보시면서 “아버지는 네가 부자로 잘 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네가 일을 할 줄 알아야 아래 사람들도 부릴 줄 알게 되는 거야.” 하고 말씀 하셨다. 나는 이해 할 수 없었고, 그런 아버지를 싫어했고, 도무지 살림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 여자는 된장 찌게 끓여 놓고 화롯불에 올려 놓으면 졸을 새라, 내려 놓으면 식을 새라, 남편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우려야 하는 거야. 화로에 올려 놓았다가 졸아들면 안되니 내려 놓았다가, 식으면 안되니 올려 놓았다가 하는 것이 여자가 할 일이란다.- 나는 그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막고 싶었지만 결국 내 뇌리에 박혀 어쩔 수 없는 여자의 사슬을 나 스스로 만들어 나를 포박하고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싫다면 떨쳐 버렸어야 했던 그 말씀이 나 스스로를 여자로 살아가게 해야 하는 규범을 만들어 놓고, 그 고정관념의 틀에 나를 가두고 살았던 것 같다.
이미 시대는 바뀌어서 그런 식생활도 없어졌고 궂이 시간 맞춰 돌아 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붓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왜 남편한테 내 모든 것을 걸고 그의 일 거수 일 투족에 맞추어 살려고 했을까?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이었을까? 나는 이해 할 수도 없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지나친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치 기준도 모호한 이야기가 스스로 사슬 되어 자신을 묶어 놓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버지 말씀을 기억한다. 내 뇌리 속에 깊이 담겨 있으니까. - 손님께서 오셨을 때는 곁에서 수발해 드려야 하니 손님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너는 식사 해서는 안 되고 지켜 서 있어야 한다.- 내가 주부가 되니 당연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자연히 그런 자세로 손님을 접대 한다. 아버지께서 하셨던 그 많은 잔소리가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이치에 맞았건만 왜 그 때는 그렇게 싫었을까? 그러나 난 아들한테 잔소리 안 한다. 그렇게 작정을 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나 스스로를 지켰다. 나의 잔소리가 아이의 가는 길을 왜곡 시킬까 두려워서이다. 혼자 키우는 아이에게 바른길을 가르치다 보면 지나치게 엄격하고,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보다 가르치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마련인데 삶의 지침을 내가 만들어 놓고 이리해라, 저리 해라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매너는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해서 4,5살 때부터 대중 앞에 나갈 때는 의복에 신경을 쓰게 했다. Los Angeles 최고의 공연장에서 토요일이면 어린이를 위한 심포니 연주회가 있었다. 매주 토요일 시즌 티켓을 구입해서 아이를 데리고 갈 때면 양복을 입혔다.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었으니 자연히 점잖은 자세로 걷고 행동 하였다. 반 고호나 피카소의 특별 전람회를 데리고 갈 때도 꼭 같은 정장 차림을 고수 하였다. 물론 주일 예배 때도 나는 정장을 고집하였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주위의 친구들과 비교를 시작하더니 엄마의 의견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구나. 내가 가르칠 수 있는 한계가 있구나. 세상 풍습 따라 가는 아이를 나는 더 이상 말씀으로도 관습으로도 가르칠 수 없었다. 누구나 다 청바지에 티셔쓰인데 왜 나만 양복과 셔쓰를 입어야 하느냐는 아이의 항변을 더 묵살할 수 없었다. 이 하나의 양보가 결국 많은 것을 잃게 하는 것을 모르고 다수를 따르는 것을 허용했던 엄마의 우매가 어리석었다. 아이가 뉴욕으로 옮겨 간 것이 20살 때인가,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이사를 갔다. 때마침 유명 배우 몇 커플을 초대해서 백악관 투어를 하는데 어떤 배우의 초대로 하루를 백악관을 돌아 보았다. 집무실, 도서실, 식당, 주방, 꽃집등등. 자유롭게 다니는 아이한테 촌스러움이나 매너 없는 모습은 없고 멋있고, 센스 있는 근사한 동양 청년으로 보여졌다. 그래 매너를 잘 가르쳐 주면 다른 것은 자기 스스로 잘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맞았어. 라고 생각 했었다. 그렇다고 매너 속에 성실이 담겨지는 것도, 거룩이 담겨지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기 위해 나의 최선을 주께 먼저 드리고, 십일조와 첫 열매와 헌신을 삶을 통해 보여주고 가르쳤건만 아이는 세상 속으로 흘러가서 이제 믿음 생활이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지경이 되었다. 세상을 따라 너무 멀리 갔다. 내 교육이 잘못 되었나 하는 의구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그 뜻이 또한 하나님의 때에 이루워 질 것을 믿으며 오늘도 기도 자리를 지킨다.
13. 하나님! 저희에게 가르치소서!
11. 미 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