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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이야기1: 초대교회의 예배와 성례전
홍삼열 목사  
2018-09-18 02:42:07   조회 : 8363

신약성서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유대교인”으로 생각하였지 다른 집단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유대교가 대망하던 메시야가 곧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부정이 아니라 유대교의 완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한동안 유대인들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며 계속 성전예식에 (성전이 사라진 후부터는 회당예배에) 참여하였고 유대교의 관습과 율법을 지켰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다음날 주일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자기들끼리 따로 모인다는 것뿐이었지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독교는 유대교와 전혀 다른 종교라는 인식이 확고해지면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유대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일 예배만을 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을 말해주는 주일 예배에 덧붙여서 기독교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하며 참회를 하였습니다. 금요일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날을 기리기 위해 금식을 하며 죄를 고백하였고, 수요일은 어떤 이유에서 금식의 날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마 유대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는 것을 따라서 아니면 그것과 구별 짓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대개 교인들 중 큰 집을 가진 사람의 집에서 모였고, 200년경부터는 어느 한 사람의 이름으로 집을 구입한 후 그 내부를 개조해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을 구입한 사람이 자연히 그 교회를 치리하게 되는데 그를 장로[presbyter]라 불렀습니다.) 때로는 카타콤을 예배장소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순교자들의 무덤 곁에서 그들의 순교일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어쨌든 카타콤에는 큰 공간이 없기 때문에 적은 인원이 아니고서는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따라서 교인의 숫자가 늘어날 경우 그들은 도시 밖 카타콤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고 교인들을 나누어서 다른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하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 것으로 보는 게 옳습니다. 이렇게 하여 한 도시에 여러 교회가 생기게 되는데, 어떻게 신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독이 치리하는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빵의 일부를 남겨두었다가 그것을 주변의 여러 교회들에 보내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지요. 이 빵을 받는 각 교회는 자기들이 성찬식을 거행할 때 그것을 자기들이 준비한 빵에 함께 넣어서 사용하는 식으로 또한 각 교회가 전국에 있는 모든 감독들의 이름을 적은 나무판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성찬식을 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기도하는 방법으로 교회의 일치성을 재확인했답니다.

당시 교회에서 사용한 언어에 대해 살펴보자면, 교회에서는 아람어를 사용하던 이스라엘 지역의 몇 교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리스어를 사용하였답니다. 이런 현상은 라틴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로마나 프랑스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 사는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그리스어권에서 이미 기독교인이 된 후 비즈니스하기 위해 그곳에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었겠지요. 만일 라틴어를 교회의 공식 언어로 사용했다면 로마 서쪽의 유럽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는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그리스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소아시아, 시리아, 유대, 이집트 지역에서는 분명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교회로서는 공식 언어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 가서 설교할 때 라틴어로 설교하지 않고 그리스어로 설교한 것을 보면 이런 언어적 배경이 이해되실 겁니다. 그 후 200여년부터 점차적으로 라틴어권 지역 교회들에서 라틴어에 보다 익숙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기게 되면서 라틴어권 교회에서는 라틴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리스어권 교회와 신학적인 또는 관례적인 차이점들이 생겨나게 되었답니다.

세례와 성찬식은 기독교의 시작부터 시행되던 주요 예식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이지요. 세례 예식은 보통 1년에 한 번 부활절 새벽에 실시했는데, 사도행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에게 곧바로 세례를 주었지만, 기독교가 유대 밖으로 전파되고 이방인들이 많이 교회로 들어오게 되면서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보다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3세기 초에는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면 3년에 걸쳐 정기예배에 출석하면서 교육을 받아야 했고, 3년이 지나서 첫 번 사순절을 지나게 될 때 그때 특별 집중 교육을 받았으며, 그 후 세례받기 직전의 금요일과 토요일에 금식을 한 후 부활절 새벽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식에 사용하는 물은 대개 흐르는 물을 사용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예를 들어 추운 흑해부근에서는 물을 데워서 사용했고, 사막지역에서처럼 물의 양이 많지 않아 침례를 할 수 없을 경우 또는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세례 받기를 원할 경우 물을 세 번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원래 세례는 기독교에서 처음 시작한 의식이 아니고 이미 여러 종파에서 시행하던 예식이었고, 유대교에서도 세례를 개종자를 받아들이는 예식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예식을 마귀와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서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예식으로 그 의미를 변형시켰는데, 당시 지역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세례 예식은 다음의 형식을 따릅니다. 먼저 목사가 세례식을 행할 물에 성령이 임재하시기를 기도한 후 세례 받을 사람이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갑니다. 곧 이어 그는 어둠을 상징하는 서쪽을 향하여 서서 이제부터는 마귀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선언을 합니다. 때로는 그쪽으로 침을 뱉기도 하지요. 그 다음 빛을 상징하는 동쪽으로 돌아서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목사가 “당신은 성부를 믿습니까?”하고 물으면, 세례자는 성부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성자와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이 이어집니다. 그 다음 목사는 세례 받는 사람을 세 번 물속에 담그든지 아니면 머리에 물을 세 번 붓고, 곧이어 그에게 정결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먹을 물을 주고, 천국백성된 것을 기념하여 흰 옷을 입혀줍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성령임재를 위한 안수기도를 하고 꿀과 우유를 먹입니다. 이렇게 새로 세례 받은 사람은 곧바로 다른 교인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처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지요.

성찬식(Eucharist; thanksgiving을 의미함)은 Eucharist라는 단어 자체가 말해주듯이 처음에는 즐거운 행사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보면, 초대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었다고 기록되어있고, 유다서 12절에도 “사랑의 식탁”(Agape)에 대한 언급이 있지요. 다시 말해 초기의 성찬은 애찬과 별 구분없이 신자들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한자리에 모여앉아 식사를 함께 나누며 형제애를 나누는 행사였는데, “아가페”라는 용어에 담긴 헛소문, 즉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음란한 행위를 한다는 소문과 그에 따른 박해 때문에 2세기부터 성찬식과 애찬식이 분리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완전히 그 두 가지가 다른 시간에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은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여 행하는 엄숙한 행사가 되었고, 애찬식은 모든 사람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친교의 행사가 된 것이지요.

4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예배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우선 성인남녀가 따로 앉고, 청소년들이 따로 앉고, 유아를 가진 어머니들이 따로 앉고 예배가 시작됩니다. 성경본문은 구약과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하나씩 세 군데서 선택되는데, 성경봉독자가 복음서를 읽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 후 목사가 봉독된 말씀에 대해 설교를 하고 축도를 하면 제일 먼저 학습인들이 예배당을 떠나고, 그 후 곧 세례 받을 사람들이 떠나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았지만 근신 중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머지 세례 받은 교인들이 성찬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성례전의 유효성에 관련하여 3-4세기에 두 가지 중요한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첫째는 이단사상을 가진 목사가 성례를 행했을 때 그것이 유효한가의 문제이고, 둘째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목사가 성례를 행했을 때 그것이 유효한가의 문제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유효하다”입니다. 우선 첫째의 경우부터 살펴보지요. 3세기에 시프리안 감독과 스데반 1세 감독이 이단자가 행한 성례의 유효성에 대해 대립했습니다. 시프리안은 이단이 교회 공동체 밖에서 행한 세례는 무효이고 따라서 이단자에게 세례 받은 사람이 정통 교회에 들어오고자 할 때는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두 가지 근거를 댔는데, 첫째는 잘못된 교리를 믿고 있는 이단자에게는 성령이 없기 때문에 그가 행한 세례를 통해 성령이 세례 받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교회를 어머니로 섬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데반 1세는 “물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세례는 집례자의 신학사상과 상관없이 유효하다”는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정통교리를 역설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례받는 사람이 평생 자기의 세례가 유효한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세례받을 때 집례자가 행여나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세례는 그런 인간적인 기준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스테반 1세의 생각이었습니다.

비슷한 논쟁이 4세기 초에 다시 발생하였는데, 도나티스트들은 성례는 집례자의 윤리적 상태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면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카르타고의 감독이 죽고 후임으로 시실리안이란 사람이 차기 감독으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도나티스트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요. 곧 그들은 그 감독선출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유를 댄 것이 그에게 안수한 세 명의 감독중 하나가 과거에 디오클레시안 대박해 때 성경을 로마당국에 넘겨준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례를 행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윤리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성례는 무효라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정통 교회의 교리로 반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집례자의 윤리성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윤리성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이다. 성례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 성례를 행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례를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례를 행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라는 것이 어거스틴의 생각이었고, 이것이 교회의 정통 교리가 된 것이지요. 

     525.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523. 임마누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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