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16-25절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박해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럴 경우 절대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라고 제자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24절과 25절 말씀이 그점을 잘 설명해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만족스럽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했겠느냐!” 예수님 자신이 스승이 되어 박해를 받고 순교자가 되었다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추구해야 하며, 그 목적을 위해 박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박해의 대상이 되었는데, 맨 처음에는 유대교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로마 당국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관여하지 않았고, 유대교에서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보아 박해를 가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야고보와 스데반의 순교사건인데, 이들은 로마의 정식 재판과정을 통하지 않고 유대교인들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로마당국의 박해를 받은 것은 네로황제(54-68) 때부터인데, 이때 쯤 로마당국은 기독교가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만일 기독교가 유대교가 아니라면, 로마는 기독교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 되겠지요. 당시 로마는 유대교에게만 종교적 자유를 허락했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지독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더이상 유대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 이상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그냥 놔둘 이유가 없고, 그래서 그들을 직접 박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된 계기는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였습니다. 전체 14구역 중 10구역이 다 타버린 엄청난 화재였습니다. 그런데 타지 않은 4구역 중 2구역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네로는 희생양이 필요하던 차에 (당시 네로가 불을 지른 장본인이고, 그가 로마를 태워버리고 자기 이름으로 도시를 재건축하기 위해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루머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여론을 몰아가서 결국 기독교인 대학살을 연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억지로 짐승의 가죽을 입은 채 성난 개들에게 찢겨 죽는 일이 허다했고, 원형경기장의 조명용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몸이 타는 비인륜적인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이때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트라얀 황제(98-117)와 그의 총독 플리니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3세기 이전의 기독교 박해의 양상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비두니아와 본도의 총독인 플리니가 자기에게 잡혀온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트라얀 황제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그들을 조사해본 결과 별 큰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법에 의하면 기독교는 불법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을 처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먼저 배교할 기회를 주고 그들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또한 현재 잡혀오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그들을 조직적으로 색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잡혀오는 사람들만 처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트라얀은 다음의 지시를 내렸습니다: 1) 기독교인들을 적극적으로 색출하지는 말 것 (그런 일을 하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 2) 익명의 고발은 절대 받아들이지 말 것. 우리가 트라얀과 플리니의 이런 서신왕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에는 아직 조직적이거나 전국적인 박해는 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박해는 산발적이고 지역적인 사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항상 조심해야 했습니다. 행여나 이웃에게 원한을 사서 관청에 고발이 들어가면 체포되어 처형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조직적인 박해의 양상은 데시우스 황제(249-251) 때 바뀌게 됩니다. 이전에는 박해가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 집단적 차원, 또는 지방 관청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데, 데시우스 황제는 박해를 정부 차원의 조직적이고 전국적인 박해로 발전시켰습니다. 전에는 절대 쫓아다니며 기독교인들을 색출하는 일은 없었는데, 이제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색출해 나갔습니다. 또 한 가지 데시우스가 행한 박해의 특징은 기독교인들을 잡아 처형하는데 역점을 두는 대신 그들을 배교하게 만드는데 역점을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의 박해자들보다 한 수 위의 정책을 쓰는 것이죠. 터툴리안이 말했듯이 기독교인이 피를 흘릴 경우 그 피는 씨앗이 되어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박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것보다 배교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정책을 썼던 것이였죠. 데시우스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그의 박해를 통해 교회는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데시우스의 조직적인 박해에 직면하여 기독교인들은 다양하게 반응하였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이방 신들에게 경배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신들에게 경배할 때 배부하는 딱지를 몰래 구입하여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래야 기독교인이란 죄로 체포될 경우 그것을 보이고 무사히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박해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시프리안 감독이 그런 경우입니다. 물론 그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혀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데시우스가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갑자기 죽게 되면서 박해가 일시에 중지되었고, 곧 바로 옥에 갇힌 사람들이 풀려났고 도망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배교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배교자들을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감독들은 자기들이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고백자들(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고수하면서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박해를 통해 신앙을 입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배교의 문제에 관한 한 자기들이 권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박해 때 신도들을 버리고 도망간 감독들과 비교할 때 자기들에게 월등히 권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감독들 간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노바티안같은 사람은 당시 교회가 너무 쉽게 배교자들을 받아주는 것을 비난하며, 교회를 갈라나가기도 하였습니다.
데시우스 이후 많은 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은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게 하셨고 그를 통해 기독교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콘스탄인은 비록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 일을 한 사람은 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였습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가 공인하는 종교들 중 하나로 만들었고 교회사업을 위해 재정적, 정치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왜 로마의 황제들은 그토록 기독교를 박해해야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찬식 때 아이를 죽여서 살과 피를 나눈다거나 비밀리에 모여서 서로 형제니 자매니 부르며 혼음을 즐긴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황제를 위시한 지식인층들은 그런 루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하였습니다. 즉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사상적, 종교적 체제를 뿌리부터 흔들어놓는 종교이기 때문에 철저히 박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기독교는 전통을 무시하는 반란의 종교라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로마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 특히 전통적인 종교의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로마사회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기의 뿌리인 유대교의 전통을 부정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통을 귀중히 여기는 로마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정치체제에 해가 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그 나름대로 오랜 전통을 고수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나마 인정할 가치가 있었지만, 기독교는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하는 반란의 종교이기 때문에 인정할 가치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한 두 번째 이유는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 혼합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는 넓은 영토를 통일하기 위해 종교의 통일을 시도하였습니다. 즉 여러 부족들이 섬기는 신들을 제우스와 헤라의 밑에 위치시켜서 각 지역을 로마 밑에 귀속시키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신들에게는 수호신의 자격을 주어서 각 지역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역할을 맡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이 진짜 신이라고 주장하며 이방신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이런 비타협적인 자세에 대해 로마인들은 그것이 로마의 평화에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신을 노엽게 하면 흉년이 들거나 홍수가 나거나 전쟁에서 패하거나 하는 재난이 닥치는데, 기독교인들이 신들에게 예배하지 않는 것이 신을 노엽게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로마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철저히 박해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로마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현재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자처하였습니다. 믿음을 져버리고 세상에서 편안하게 사느니 믿음을 지키고 세상에서 고난당하며 순교당하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믿음을 위해 순교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