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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이야기(8) 종교개혁기의 유아세례 논쟁
홍삼열 목사  
2018-12-27 04:08:21   조회 : 8222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체험을 한 후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고, 곧이어 백성들이 마음에 찔려서 베드로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권면하면서 그렇게 하면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38절). 그 다음 베드로는 이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설명해주는데 그들은 곧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과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성인(成人)들 뿐만 아니라 글자 그대로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란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한 내용이 나오는데, 바울은 그곳에서 두아디라성 출신의 루디아와 그의 온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얼마 후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온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추측할 수 있는 바는 그 “온 가족”에 당연히 아이들도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가족의 구성을 생각해볼 때 보통 가정에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세례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는 유아세례를 성서적이고 전통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했지만 믿음의 순수성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유아세례를 비성서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배척하였습니다. 중세말의 왈덴시안파(Waldensians)나 카타르파(Cathars)가 좋은 예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분명한 예가 없기 때문에 유아세례는 비성서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후에 16세기에는 이런 “비성서적”인 이유에 덧붙여 어린아이에게는 생각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세례를 줄 수 없다는 이론이 생겨났습니다. 어린아이는 생각하거나 결단을 내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없고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신앙고백을 할 수 없고 신앙고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논리였지요. 이렇게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재침례파(Anabaptist)라는 딱지가 붙었는데, 그 이유는 유아세례받은 사람들을 교인으로 받을 때 다시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이 재침례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신앙고백이 없는 세례는 세례가 아니었으니까요.

16세기 재침례파 운동은 스위스 쥬리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쥬리히에는 이미 쯔빙글리라는 사람이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재침례파 사람들은 그의 개혁운동이 시원치 않다고 보고 그에게 보다 확실한 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거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이나 신학교육은 불필요하다거나, 유아세례나 오르간이나 4부합창 같이 성경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거나, 자기가 위험에 처했어도 절대 칼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쥬리히를 개신교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쯔빙글리는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가톨릭이나 모슬렘이 침입해도 절대 칼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요구와 새로운 사회 건설에 긴요하게 사용될 유아세례 제도를 거부하라는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전에 쯔빙글리의 개혁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에게서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따로 모임을 가졌고 여러 문제들 중 유아세례 문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들 중 가톨릭신부였던 조지 블라우락(George Blaurock)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벌써 한참 전에 세례를 받고 사제서품까지 받았지만, 재침례파 운동에 가담하고 나서는 이전에 자기가 가졌던 신앙이 진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세례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모임에 자기 외에 성직자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그 모임을 지도하던 평신도인 콘래드 그레벨(Conrad Grebel)에게 세례를 요청했고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블라우락은 자진해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후 이들은 전역을 돌아다니며 개울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재침례파운동이 점점 퍼져나가자 쥬리히시는 모든 재침례파 사람들을 잡아서 물에 빠쳐 죽이라는 법을 발표하였고 (불법적으로 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물로 죽여야 마땅하다는 논리이지요),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운동이 유럽 각국으로 침투해 들어가게 되면서 그곳에서도 유사한 법이 발효되고 그 법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죽었습니다.

재침례파 사람들은 유아세례를 비성서적인 것으로 부정했지만 대부분의 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아세례를 성서적이고 전통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성경에 유아세례에 대한 명백한 가르침이나 예가 없고 이성적으로 따져도 믿음의 결단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재침례파 사람들에게 종교개혁가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1) 첫째로 루터는 유아는 믿음이 없지만 그의 부모나 후견인의 믿음으로, 더 크게 봐서는 교회 전체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별로 말발이 서지 않는 것을 감지하고 후에 생각을 바꿨습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니까 하나님은 어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믿음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아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아이가 세례받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은 말씀을 듣고 이해해야 생기는 것이지만 때로는 하나님은 자기가 믿음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아이들도 포함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아이가 세례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었을 경우 하나님은 그 아이를 세례받지 않았다고 지옥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일방적으로 구원의 믿음을 주시고 구원시키신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쯔빙글리를 제외한 모든 개혁가들은 세례는 믿음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좋다고 주장합니다. 세례예식 자체에 그런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세례예식에 부가된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리고 세례에 따르는 성령의 역사 때문에 믿음이 증진된다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으면 이런 유익이 있는데 왜 그것을 마다하느냐는 것이죠. 3) 셋째로 칼빈과 쯔빙글리는 신약성서에 유아세례에 대한 명백한 예가 없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여자에게도 성찬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됩니다. 성경에 어디 여자에게 성찬을 주었다는 명백한 예가 있습니까? 성경에 어디 여자에게 성찬을 주라는 가르침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여자에게 성찬을 주었다는 “글자”나 실제적 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성찬을 받도록 명령하셨다는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의 경우에서도 명백한 예나 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세례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4) 넷째로 쯔빙글리는 세례는 구약시대에 행한 할례의 연장이기 때문에 영적인 의미에서 유아세례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구원의 언약을 맺으신다는 표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영적인 할례인 세례는 하나님이 영적인 이스라엘과 구원의 언약을 맺으시는 표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따라서 만일 구약시대에 할례를 통해서 아이들이 구원 공동체에 가입했다면, 신약시대에도 세례를 통해 아이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5) 다섯째로 세례는 하나님의 칭의(稱義) 또는 구원의 약속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은 어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말 못하는 아이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칼빈은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세례를 받으면 그 즉시로 죄가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가 실제로 점점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여섯째로 종교개혁가들은 아이들이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세례를 줄 수 없다는 논리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재침례파 사람들의 주장대로 세례받는 사람들은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세례 후에도 죄없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세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구원의 징표인 세례를 받을 만큼 충분히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고 아이들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오직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는 세례받을 때 필요한 믿음은 내가 가진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구원을 받기에 충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기에, 세례받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의지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에 “의지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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