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다.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이러한 의견 차이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선 두 가지 극단을 피하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그 다음에 올바른 감리교적/개신교적 입장을 제시해 보겠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명 근본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문자들, 심지어 성경의 “일점일획”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사람은 현미경적인 눈을 가지고 성경을 구석구석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토록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려는 신앙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로, “일점일획”이란 개념은 성경의 원어(原語), 즉 구약의 경우 히브리어와 신약의 경우 헬라어에만 국한해서 적용해야 하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원어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이 개념을 원어에서 번역된 한국어성경 혹은 영어성경에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에는 항상 번역하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어떤 번역본을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근본주의자들은 영어 번역본으로는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을, 한글 번역본으로는 개역한글판 만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집하고 다른 번역본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일점일획”의 개념을 잘못 적용하는 것이다. 둘째로, 이들은 성경의 모든 글자를 소중히 여긴다고 하지만, 왜 어떤 경우에는 성경에 기록된 사항을 글자 그대로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돼지같이 새김질하지 못하는 짐승이나 오징어같이 비늘없는 물고기를 먹지 말라는 레위기의 음식법(11 장 7,10절)이나 여자는 교회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드리라는 고린도전서 11장 5절의 경우 그들은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글자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일점일획”의 원칙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문자주의적인 견해가 성경의 문자를 우상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로마가톨릭교회(이하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교회전통을 우선시하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교회가 그것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교회가 없었다면 진리의 표준으로서의 성경의 개념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교회는 성서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전통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 있고, 더 나아가 교회의 권위가 성서의 권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황무오설(교황의 말은 언제나 진리라는 설), 마리아 무흠수태설(예수님처럼 마리아 자신도 죄없이 잉태되었다는 설), 마리아 승천설(마리아도 예수님처럼 승천했다는 설)의 경우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바가 없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전통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어떤 사항을 진리로 선포하면 그대로 진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이렇게 성서의 문자에 매이지 않고 문자 이외의 새로운 계시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성서의 문자에 갇혀있을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는 나머지 성서의 권위와 교회전통의 권위를 동등하게 생각하면서 성경에도 없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장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어찌 교황으로 대표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와 견줄 수 있단 말인가? 16세기 종교개혁가인 부처(Bucer)의 말을 인용하자면, 성경과 교회전통의 관계는 왕과 왕의 편지를 전달하는 사자(使者)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왕이 어떤 지역에 사자를 보내어 편지를 전달할 때, 그것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왕의 권위가 담긴 편지로 받아들인다. 왜 그런가? 편지를 전달하는 사자가 권위가 있기 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그가 왕이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가? 물론 정답은 후자다. 왕이 보낸 편지의 권위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전달자는 왕의 권위로 인해 덩달아 권위가 인정되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전달자로서 교회가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자체의 권위 때문이 아니고 성경의 주인인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권위가 교회로부터 나온다거나 교회가 성서와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선택해야 하는가? 앞의 두 가지 오류를 피하는 중도적인 입장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글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는 오류도 피하고 성서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찾는 오류도 피하는 입장, 즉 루터와 웨슬리의 입장이 그것이다. 이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이유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구약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유대인의 성서로서 읽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될 구원의 예비단계로서 읽고, 신약성서를 읽을 때도 단순히 글자 자체가 가리키는 내용을 중심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그 글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에게는 글자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가톨릭신자들에게는 성서와 더불어 교회전통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에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라 그 문자가 담고 있는 구원의 메시지라는 것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구원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으면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원래 성서는 소설책이나 과학책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