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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신혼 초부터 내게 반복하며 주입 시킨 정신이 하나 있다.
언제든지 이사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내 것, 내 계획을 고집하기 보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순종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변화를 두려워하고 적응력이 늦는 나로서는 아주 겁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30년이나 익숙하게 편히 즐기며 살던 곳을 떠나 미국이라는 낯선 곳으로 모종 시켰으니, 내가 겪어야 했던 변화와 적응의 체감도는 정말로 견디기 힘든 풀무 속과 같았다.
물론 그 고통으로 인해 자아가 녹아 내리는 변화가 생겼고, 하나님의 방법에 적응하게 되었지만, 이사를 할 때면 나와 내 딸에게서 흘러 나오는 변함 없는 타령이 있다.
이사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 딸은 “이사 가면 이제 내 방 생겨요?”라고 은근슬쩍 압력성 타령을 하고, 나는 책 없는 깔끔 삼빡한 이삿짐을 꾸려 봤으면 하는 푸념성 타령을 한다.
우리 부부 둘 다 유학생 신분으로 시작 된 미국 생활일 뿐 아니라, 본래 책을 좋아하는 남편인데다 책과 뗄 수 없는 목회자다 보니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내 방 마련의 꿈’을 강력히 피력하는 딸 아이의 주장보다 남편의 서재나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우선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번 사역지였던 베이커스필드에서 이 곳 몬트레이로 이사하는 것이 딸 아이에게는 자신의 꿈 실현을 위한 기대감 있는 변화이지만, 이삿짐을 꾸려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즉 두 방과 거실의 벽 사면을 둘러싼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과 바닥에서부터 탑을 형성하며 기다리고 있는 책들은 다시 나의 타령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주여, 제발 책 좀 없는 집에서 살게 하시면 안되나요?’
한 겹 얇게 쌓인 먼지에 뒤 덮여 있는 책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목회 사역의 연륜만큼이나 쌓여져 가는 도저히 정돈이 불가능한 복사물과 다양한 크기의 인쇄물 자료들은 이삿짐 살 때마다 여러모로 골치거리가 되었다.
짐을 풀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방은 한 칸 더 생겼지만 고등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 녀석에게 하나씩 주고 나니, 침대마저 버려도 도대체 책을 둘 곳이 없었다. 할 수없이 딸과 아들 방의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자신의 방이 생긴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뻐서 벽 쪽으로 아빠의 책꽂이가 둘려지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아들 녀석과 달리, 딸아이는 아빠의 책이 든 박스들이 자신의 방에 놓이자 통통 부은 얼굴로 그 것들을 발로 차더니 아빠를 설득하려고 했다.
“아빠, 이 방은 내 방이예요. 왜 아빠 책을 내 방에 두세요? 이제 내 방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싶은데 이 보기 싫은 박스들을 두면 어떻해요? 그리고 이 옷장에 엄마나 아빠 옷은 걸지 마세요. ”
그러면서 걸려져 있던 옷과 책 박스를 방 밖으로 도로 옮겨 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딸아이에게 치솟는 혈기로 인해 “그래? 이 집 세는 우리가 내니까 그럼 너도 네 방 세를 내면서 살아라” 라며 쏘아대고는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갔다.
딸 아이의 이기심에 못 내 섭섭해 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사뭇 그 모습이 바로 나를 반추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나님, 내 인생이에요. 내 인생이니까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으니 제발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마세요. 주님은 내 삶의 계획 밖에 계세요.”
예배를 마치고 나자 청년 자매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사모님, 꼭 십일조를 해야 하나요?”
난 그 자매에게 우리 딸 아이의 ‘내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있었던 얘기를 해 주었다.
사랑하는 내 딸이니까 이사하면서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 자기 방을 한 칸 주었는데, 자기 방의 조그만 공간을 내어놓는 것조차도 아까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써 무척 섭섭하고 속상했다고.
우리가 누리는 건강, 직장, 물질, 자녀 모두 주님이 주신 것인데, 혹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지혜로 이룬 내 것이라 생각하고, 그 분을 나의 시간과 물질, 헌신을 요구하시는 분으로 혹시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207. "나, 점 뺐어!"
205. 새해 결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