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숙 사모.jpg)
2008년 새해가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이다. 나는 4월 달력 장을 넘길 때마다 기억나는 시가 있다.
대학교 때 배운 T. S. Eliot 의‘황무지’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4월은 잔인한 달.’엘리옽은 일년의 12달 중에서 왜 봄기운이 돌면서 모든 생물들이 움트고 꽃이 피는 4월을 잔인하다고 읊조렸을까?
여느 집도 그렇겠지만 우리 집은 아침만 되면 전쟁이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8살 난 아들을 깨우는 것이다.
먼저 아들의 이름을 큰 목소리로 부르며 깨운다.
‘으응~~’ 희미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부엌에서 바쁘게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이에 아이는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아차 싶어 부엌에서 몇 번 더 크게 불러보지만 영 반응이 없다. 할 수 없이 새벽 공기로 차가워진 내 손을 자는 아이의 잠옷 속으로 집어넣어서 간질이기 시작한다. 달콤한 잠 속에 빠져있는 아들은 차가움에 몸을 비틀며 나를 껴안고 ‘5분만 더’라며 잠꼬대처럼 중얼거린다.
이불자리에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와 아직도 애기 티를 벗어나지 못한 아들녀석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평안한 얼굴을 보면 잠이 부족한 듯한 나도 옆에 누워 같이 자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1분만’하고 아이 옆에 눕게 되면 그날 아침은 온통 지각으로 엉망이 된다. 고통스럽더라도 그 편안하고 아늑함을 나뿐만 아니라 아들도 깨어날 수 있도록 계속 얼래고 달래야 한다.
마지못해 일어난 아들이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밀어 올리면서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면 드디어 콩 튀는 듯한 바쁜 하루 일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 하루에 기대감이 충만하다. 우리 각자가 맡은 곳에서 우리에게서 최고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예비하심을 이루어드리는 하루가 되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4월이 되면 겨우내 편안한 휴식에 잠들었던 꽃나무들은 그 두꺼운 표피를 뚫고 꽃 봉우리를 피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명은 잉태되고 꽃피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게 있다.
그러나 편안하다고, 달콤하다고 계속 그렇게 머물러 있으면 생명을 키워내거나 성장할 수가 없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편안하고 익숙한 내 신앙생활의 테두리를 깨고 한 발작 더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은 고통스럽다.
특히 낯선 이국 땅에서 학생으로서 또는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일주일의 삶 속에서 주일 날 예배 참석만 하는 것은 편리한 것 같다.
봉사와 섬김 없이 크리스찬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의 의무로 할 일을 다했다는 자기 위로감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이 곳에, 이 상태로’라는 안주하는 신앙 생활을 탈피해서 내 시간과 달란트, 희생을 드린다는 것은 엘리옽이 얘기한 것처럼 잔인할 정도로 내 자신에게는 고통일지도 모른다.
변화산상에서 베드로가 본 광경이 너무 영광스럽고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한 대로 초막을 짓고 그 곳에 안주 했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주일 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인간 관계 돈독을 위한 사교 모임이 아니고 진정과 진리로 경배 드리기 위해서는 겨우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덮어 섰던 외피를 뚫어 내는 자기 파괴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나의 필요를 채우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부흥을 갈망하는 씨를 품는 것이다.
4월이건만 아직도 꽃샘추위 같은 쌀쌀한 바람이 내 몸과 영혼을 깨우기에는 움츠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 4월에 내 자신에게 좀 잔인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 안주하는 삶, 안주하는 신앙 생활에서 깨어나 최고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기대하며 내게 심겨진 씨앗이 싹터서 꽃 봉우리를 피워내도록 해야겠다.
211. "남편 내려놓기"
209. 예수님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