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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내려놓기'

한혜숙 사모 clifenet@yahoo.com

2015-01-23 05:13:38 조회 : 2948

얼마 전 성경 공부 시간이었다. 공부를 인도하던 목사님이 “여러분은 ‘하나님’ 하면, 어떤 것이 생각나십니까?"라고 물었다. 내 앞에 앉은 성도님들이, ‘사랑,’ ‘아버지,’ 또는 ‘전능자’ 등등의 모범 답안을 쏙 쏙 얘기하는데, 막상 마이크가 내 앞에 오자 겹쳐지는 생각들로 선득 말 할 수가 없었다.

쭈삣 쭈삣거리는 동안 침묵이 흐르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나한테 쏠렸다. “한 사모님, 말해 보세요!”라는 남편 목사의 재촉이 떨어졌다. 해필 왜 이럴 때 ‘사모’임을 강조 하는지… 어떨 결에 “솔직한 대답을 원하세요?”라고 부인 성도가 물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성도님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저는요…이번 주 동안 하나님이 독재자라고 생각했어요.” 모두들 동감내지 공감 보다는 뜨악한 표정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평신도인 나와 목회자인 남편은 서로 다른 한 주간의 사이클을 가지고 살아간다. 목회자의 마음은 물론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성도님께 쏠려 있지만 긴장감이랄까 영적 부담감이 주일을 향해 갈수록 고조가 될 수 밖에 없다. 한편 직장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주말을 향해 갈수록 턱걸이 하는 심정이 되면서 서서히 나사가 풀리기 시작한다.
특히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만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듬뿍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여유를 마음에 품고 싶다. 주중에는 아침마다 두 아이의 도시락을 싸면서 동동거리는 바람에 항상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데, 토요일만이라도 오붓이 식탁에 다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싶어진다. 미뤄 논 집안일이라든가,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킨다든가,
또는 가족들과 좋은 영화라도 한 편 같이 보면서 충실하지 못했던 엄마 역과 아내의 역을 보충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바램을 가진다. 혹이라도 햇볕이 강렬하게 바다를 눈부시게 하는 날에는 바다 물개 소리를 음악 삼아 남편과 평상시에 둘이 못다한 속얘기라도 나누며 해안을 따라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기는데, 실상 남편을 내려놓아야 하는 본격적인 목회자 아내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목회자이라기보다 한 여자의 남편임에 더 무게를 두고, 내 사이클에 남편이 맞춰주기를 기대할 때는 주일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곧잘 부부싸움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소파 밑에 쌓여 있는 뿌연 먼지를 보면서 ‘그래, 이번 토요일엔 대청소를 해야겠군’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토요일 날 청소를 시작하려고 하면, 청소기 안의 먼지 주머니 배가 뽈록하다. “여보, 이 청소기 먼지 주머니만 얼른 갈아주고 하면 안돼요?” 라고 SOS를 청한다. “으응, 알았어.” 그러나 주중에 밀린 설거지를 다 마치도록 남편은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래, 내가 하고 말지.’ 설명서를 읽고 콜록콜록거리며 갈고 난 후, “여보, 잠시만 나와서 이 소파 좀 같이 옮겨요.”라고 얘기해도 함흥차사면 진공 청소기의 떠나갈 듯한 소음으로 남편의 묵상과 기도를 날려 버린다. COSTCO 장을 보고 나서 내 힘에 겨운 쌀이나 물을 차 트렁크에 옮겨 실을 때면 나와 주간 사이클이 다른 목회자 남편을 속으로 원망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집에 와서 혼자 끙끙거리며 짐을 다 내려 놓을 때쯤에서야 ‘어, 당신 언제 왔어? 수고 했어요’하며 그 때서야 거드는 시늉을 하는 남편에게 결국 나는 선전 포고도 생략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된다. 남편은 나의 선전포고를 주일 저녁까지 연기하는 전략을 그 동안 익혔다. 주일 저녁이 되어서야 긴장이 풀린 남편은 ‘어제 당신 나보고 뭐라고 했지?’ 라며 나와 아이들에게 장단을 맞춰주려고 하지만, 그 때쯤이면 난 아이들의 일주일 스케줄과 내 스케줄을 맞추며 또 한 주간 감당해야 할 일들로 이미 팽팽해지기 시작한다.

최근 몇 달 동안 남편은 교회 웹사이트를 無에서 볼품 있게 만들어 내느라고 고전 분투하고 있다. 원래 컴퓨터라는 것이 시간 소비량이 엄청난 노동이다. 웹사이트 쪽으로 문외한인 남편은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까지 총투자 하여 드디어 혼자 힘으로 설교 동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얼마나 뿌듯하랴! 퇴근해서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서는 내게 남편은 동냥지식을 토대로 좌충우돌 하며 자신이 그 날 그 날 이루어 낸 업적을 나에게 자랑스럽게 쏟아낸다. 그것이 며칠, 지치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레벨이 최고조에 달하던 날, 50점을 받아 온 아들 시험지를 보는 순간 난 소리를 질렀다. “여보, 난 당신이 뭘 하는지 관심이 없어요. 차라리 아들 숙제나 좀 봐주지, 애 시험 점수가 이게 뭐예요?” 아직도 훈련이 덜된 나는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이러쿵, 저렁쿵 속상한 얘기를 하면서 ‘하나님, 그렇지만 저하고 결혼했으니까 제 남편이기도 하잖아요!’라고 따졌다. 이 ‘그렇지만’이 문제였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학교에 출근했는데, 멀쩡하던 내 thumb drive가 이유 없이 열리지 않았다. Back up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만약 저장 된 파일들을 그대로 잃어버리면 큰 타격이었다. 학교의 컴퓨터 전문가에게 요청을 했는데, 막상 와서 살펴보더니, 자기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연구를 좀 한 후에 다시 오겠다며 가버렸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 알겠어요. 남편을 좀 더 내려 놓으란 말이죠.’ 내 하나님은 목회자를 사랑하시는 독재자라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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