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숙 사모.jpg)
“엄마, 잘 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딸아이의 목소리에서 심히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딸아이가 여름 동안 들을 과목을 등록하고 나오는 길이였다. 이제 한 주만 더 있으면 우리 집 아이들이 모두 신나 해 하는 방학이 시작된다.
난 도시락을 뭘 싸줘야 할까 하는 고민과 더불어 출근 직전의 콩 튀기는 듯한 전쟁에서 벗어 날 수 있어서 신나고, 둘 째 아들 녀석은 매일 해야 하는 숙제나 학교에서 치는 시험으로부터 해방 되기 때문에 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여느 때 같으면 우리 딸아이도 늦잠과 게으름을 만끽할 수 있는 긴 긴 여름 방학을 신나 해 할 것이지만 매일 칼리지까지 가서 오전 내내 꼬박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번 여름방학은 신나기 보다 걱정부터 되나 보다.
특히 신청한 과목의 담당 교수가 무척 까다롭고 공부를 무지 많이 시키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처음 겪어보는 4주간의 인텐시브 과정을 잘 감당할 수 있을는지 겁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니?”라고 물었다. 힘들지만 4주간의 짧은 기간 동안 공부를 잘 마치면,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 걸리는 과목을 건너뛰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절약되고 나중에 과목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한다.
엊그제만 해도 엄마의 도움 없이는 매사에 쭈삣 쭈삣하던 조그마한 아이였는데 벌써 대학준비를 위해 커뮤니티 칼리지의 문턱을 드나든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거의 7년 전 일이다. 나에게도 인텐시브 과정이 있었다. 담당 교수는 하나님이셨다. 욥을 시험하신 일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을 통과할 때는 정말 죽을 것만 같았고, 감히 마쳐질 것 같지 않아서 절망했었다.
이제는 나보다 더 훤출 커버린 딸아이가 초등학생일 때였다. 자꾸만 팔꿈치와 무릎 같은 관절부분이 아프다는 것이다. 주위 어른들께 여쭈었더니, 아마 성장통일 거라며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셔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남편의 학위 논문이 막바지에 있었고, 난 나대로 자궁에 큰 혹이 있어서 빨리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만 맴도는 논문의 매듭과 졸업을 위해 사임을 결심했다. 이미 구두로 담임 목사님께 말씀 드린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는 수입이 제로가 될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학교 등록을 위해서 든 여행자 보험으로는 수술을 받을 수가 없어서 보험 문제 해결을 위해 나와 다른 기도 멤버들이 기도 중이었다.
그러던 중 딸아이가 학교에서 편지를 가지고 왔다. 내용인즉슨 딸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한 번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성장통과는 다른 것 같다는 것이다.
진찰하는 소아과 의사의 소견을 기다리는 동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의사는 일단 피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두 번의 피 검사 끝에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루퍼스’라는 불치병 같으니 이 쪽 분야의 전문의를 만나 보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다. 목회자의 길을 가는 남자와 결혼하면서부터 물질의 시험은 강도가 점점 가중되면서 계속 받고 있는 중이었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 학생 남편 한 사람 달랑 보호자로 두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도 두렵고 겁나고 서러운 일이었지만, 의사가 설명을 해 줘도 도대체 감도 잡히지 않는 ‘불치병’을 딸아이가 걸렸을 거라는 검사 결과 앞에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내 영혼이 숨을 쉬지 못했고 기도가 내 가슴 속에서 막혀 나오지 못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고 했던가? 풀러 신학교를 다니며 공부한 사람은 남편이었는데, 이 일로 인해 유명하기는 내가 더 유명해졌다.
그 당시의 풀러 식구들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내 한국 이름 석자를 부르며 기도했다고 한다. 앞 뒤가 꽉 막힌 암흑의 동굴 속에 갇혀 기도조차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저 쪽 끝에서 어슴프레 비춰오는 희미한 한 줄기 빛을 바라보게 하며 그 절망의 터널을 벗어 날 수 있도록 인도한 것은 나와 내 가정을 위한 이 중보 기도의 능력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혼자 덩그러니 병실에 누워 있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위로와 격려 카드가 배달 되었다. 퇴원해서도 한동안 이 사랑은 계속 되었다. 여러 지인들과 풀러 분들이 음식을 해서 우리 집에 가져다 주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6개월에 걸친 마음 졸인 정밀 검사 끝에 딸아이가 정상이라는 최종 검사 결과도 나를 위한 중보 기도자들의 간절한 기도의 결과였다.
또한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분이 남편의 논문이 마쳐질 때까지 매달 조금이지만 헌금을 하겠다고 제안하셨다.
그 분의 형편이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 부부가 잘 알기에 더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기도와 사랑의 힘으로 내 인생의 인텐시브 과정을 간신히 마쳤다.
나는 수술에서 회복해서 둘 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남편은 논문을 마치고 학위를 받았고, 어깨와 팔, 다리 관절이 아프다며 부모의 마음을 철렁이게 했던 이 아이도 여름 방학동안 늦잠 자며 편안히 놀기보다 대학 입학을 위해 스스로 힘든 인텐시브 과정을 선택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인텐시브 과정을 이수했기에 남편과 나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213. “하나님의 법칙 ”
211. "남편 내려놓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