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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이가 이렇게 되도록 병원에도 안 데려 오고 어머니 뭐했어요?”
딸아이를 진찰하던 소아과 의사가 옆에서 긴장감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꾸중을 하셨다.
남편의 공부를 위해 풀러 신학교 기숙사가 있는 파사데나라는 곳에 살 때였다. 아마 딸아이가 유치원 때였지 않나 싶다. 처음 아이가 약간의 기침을 할 때만 해도 여름 끝에 왔던 인디안 섬머의 폭염에서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지는 기온 차로 인한 단순한 감기겠거니 했다.
그래서 목에 수건도 감아주고 기침 약도 먹이며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주 중에 조금 차도가 생겼다 싶었는데, 금요일 저녁 예배 후에 뚝 떨어지는 찬 공기를 마셔서인지 잠자리에 들어서도 호흡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기침이 깊어졌다.
주일 저녁 예배 후의 밤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해 하루의 긴장을 풀어 놓으려 하는데 딸아이의 기침 소리가 더욱 심상치 않았다.
결국 딸아이는 밤새 기침으로 인해 토하며 힘들어했다.
그래도 보험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병원 가는 것을 차일피일 하며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데리고 있었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아이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황이 다급해지니 보험이고 돈이고 생각지 않고 일단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감기가 급성 천식으로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기관지가 좁아져서 그냥 두었더라면 숨을 못 쉬고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가 기관지 확장기를 목에다 집어넣고 좁아진 기관지를 일단 응급조치로 확장 시켰으니 오늘 밤에 응급실에 가고 싶지 않으면 빨리 처방한 항생제랑 약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의사가 얘기한 것처럼 아이가 숨 쉴 때마다 등에서 쐑쐑하는 소리가 들린 지 제법 된 것 같았다.
주머니 사정 계산하며 애를 지금껏 고생시킨 못난 엄마의 마음을 자책하면서도 또 다른 걱정 때문에 더 맘이 콩당콩당거렸다.
당장 약값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가진 전 재산보다 약 값이 더 많았다.
약사 앞에 멍하니 서 있으니 약사가 약을 가지고 갈 거냐고 물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며 돌아서는데 눈물이 쭉 흘러 내렸다.
대성통곡을 했다.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 이럴 수 있어요?
이러려고 저를 이 미국 땅까지 보내었어요? 내 자식이 내 눈 앞에서 이렇게 숨 쉬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당장 약 사 먹일 돈도 없게끔 해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사랑의 하나님 맞나요?’
문득 한국 부모님께 도움 요청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정을 들은 부모님께서도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셨지만 마침 한국은 추석 연휴 중이었다.
“연휴가 끝나고 은행 문 열자 말자 곧바로 약 값 송금할 테니 일단 외상을 좀 하면 안되겠니?”하셨다.
지금이야 크레딧 카드 신청하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 없이 오지만, 그 당시는 미국 생활의 필수품인 그 흔한 크레딧 카드 한 장도 가질 수 없었던 유학 초짜 생활이었으니 누가 나에게 외상을 주겠는가!
그나마 믿었던 한 가닥 희망조차 접히자, 평상시에는 더럽다고 맨 살을 절대로 대지 않았던 더럽고도 낡은 카펫 위에서 나뒹굴며 울부짖었다.
‘주님, 살아계시나요?’그 때 ‘딩동’하며 벨 소리가 들렸다. 평상시에 딸아이가 자주 들락날락 해서 낮에는 문을 잘 안 잠그고 지냈기 때문에 남편이려니 싶어 그냥 엎드려 있었다.
문이 빼꼼이 열리다 말고 내 몸에 걸려 멈추자, 사모님’하며 나지막한 목소리가 났다. 얼른 일어 나 앉았지만 내 얼굴과 마주치신 권사님의 표정이 사뭇 놀란 듯 했다.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에 사는 은혜자매의 어머니 권사님이셨다.
딸의 유학 생활을 보시기 위해 미국에 잠시 방문 중이셨는데, 몇 번의 식사 교제에서 기도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신 일들을 나누셨고, 당신이 한국으로 떠난 후에도 당신 따님을 잘 부탁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시고 남매를 키우시면서 딸아이의 유학을 위해 한국에서는 화장실 청소를 하셨고, 미국에 오셔서도 조금이라도 딸의 학비에 도움이 되려고 다른 가정의 아이를 돌봐주시는 중이어서 그 시간에 계실 리가 만무했다.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다시 문이 닫혔다. 나도 닫힌 문 뒤로 그냥 계속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딸아이는 기관지 확장기로 취한 응급 조치 때문인지 간만에 기침 없이 편하게 깊이 잠이 든 것 같았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또 울먹였다.‘하나님 어떡할까요?’감싸 않은 아이의 등에서는 계속 쐑쐑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보세요, 하나님.’그 때 또 다시 현관문 쪽에서 조그마한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사모님, 저 좀 봐요.” 아까 그 권사님 목소리였다. 나가보니 권사님이 아무 말씀 없이 하얀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권사님, 이게 뭐에요?”라며 뒤쫓아 나가자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가시다 말고 “사모님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요.”라고 말씀하시고는 얼른 아파트 문을 닫으셨다.
앞 뒤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두고 급히 아까 그 약국으로 달려갔다.
아이에게 약을 먹이면서 하나님께서 왜 과부의 두렙 돈을 귀하게 여기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나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통해 그것도 돈이 넉넉한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받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넉넉한 사랑이나 순종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그 때 체험했다.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면 항상 얇은 내 지갑을 통해, 잔고 확인을 요하는 아슬아슬한 우리 가정의 가계는 오히려 두렙 돈에 실린 과부의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14. “가장 기억에 남는 목사님”
212. “내 인생의 인텐시브 과정(intensive cou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