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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우리 집 부엌에 걸어 논 교회 달력도 12월 마지막 한 장이 달랑 남았다. 2008년 이 해도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난 유난히 ‘마지막’이라는 것에 약한 편이다. 남편의 공부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낡디 낡은 학교 아파트에 10여 년을 살면서 지겨워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고 새 사역지로 옮기면서 이사 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그간의 세월이 준 추억을 더듬으며 나 혼자 덩그런 아파트에 남아 눈물을 찔끔거렸다.
유학생이 많은 우리 교회에서 이들이 졸업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마지막 달이 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더 자주 만나며 쉽게 보내지 못하는 나의 마지막 정을 다독거리곤 한다.
2008년은 크리스챤 라이프에 원고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남편을 통해 원고 부탁을 전해 들었을 때 심장이 떨렸다. 초등학교 졸업 사진첩의 장래 희망란에 작가라고 적었던 그 꿈은 세월이 흐르며 망각 되어 나의 어느 한 부분에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싱글 때는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며 세상 학문에 심취하며 논문 집필에 쫓기고, 목사의 사모가 되어서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는 동시에 또 TESOL 과정에서 정신 없이 공부를 하느라 글을 쓸 수 있는 감성이 어느새 다 퇴색 되어버리고 딱딱하디 딱딱하게 오그라든 중년 아줌마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많이 망설여졌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모 칼럼이라는 것이 무척 부담이 되었다.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학문을 논하는 글도 아니고, 나의 가치관이나 감성을 표출하는 단순한 수필도 아닌, 사모의 눈으로 우리의 지친 삶에 커피 향내 같은 영적인 도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심한 자격지심을 들게 하였다.
그렇게 불안하게 준비가 덜 된 채로 첫 원고를 보냈다. 두 번째, 세 번째 원고를 보내면서 다소 배짱이 생겼다. 어디 그리 많은 독자가 있으려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고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을 때는 매 번 씨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모 칼럼에 글 쓰는 것이 마치 나의 영적인 계기판을 보는 것과 같아서 지난 주간의 내 삶이 그래도 간신히 하나님과 붙어 있었다 싶을 때는 자판을 두드리는 심령이 편했지만, 그간의 삶이 지치고, 불평하고, 낙담하여 감히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패잔병일 때는 글 쓰는 것이 위선 같아서 심히 괴롭고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몇 달이 지나면서 간혹 지역 교회 모임 같은 데에 가면 듣게 되는 말이 “아휴, 사모님! 실물이 사진보다 낫네요. 사진을 바꾸세요.” 라고 하셨다. 관심이라면 관심이라고 하신 말들이었겠지만, 그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글에서 살포시 전하고 싶었던 내음이 얼마나 빈약하면 칼럼에 난 사진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 .
사실 지금에서야 얘기하는 것이지만, 크리스챤 라이프에서 사진을 요구했을 때, 사진 없이 그냥 글만 보내겠다고 했었다. 부족한 글에 특출한 외모도 아닌 사진을 같이 싣는 다는 것이 부끄러운 데다, 선뜩 보낼 독사진도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컴퓨터로 재주를 부려 단체 사진에 찍힌 나의 얼굴만을 어떻게 해서 나도 모르게 보낸 것이었다.
여러 번 같은 얘기를 듣게 되자 남편은 사진을 잘 찍어 새로 보내자고 제의를 했지만, 나는 사진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차라리 사진을 빼는 것이 어떻겠냐고 농담을 했다.
글을 쓰면서 감사와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 지나갈 즈음인가 보다.
새해의 새로운 결심이 눈사람처럼 녹아져 내리며, 아내, 엄마, 사모, 그리고 직장인이라는 1인 4역의 숨가쁜 팽팽한 긴장과 시간 전쟁 속에서 때 맞춰 글을 써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주 힘들 때가 있었다.
아픈 몸으로 시린 눈을 달래며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밤 늦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렇게 제가 글을 쓰지만 과연 제 글을 읽는 사람이 있기는 있나요?’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점점 상실하고 있을 때, 소위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먼 지역에 사시는 사모님이셨다. 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다는 격려를 해 주셨다. 바쁘고 지친 나의 삶에 하나님은 오아시스 같은 활력으로 응답해 주셨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도 글을 잘 읽고 있다는 관심을 전해 주시곤 했다. 그 분들 앞에서야 살풋이 웃음으로 답했지만, 나의 마음은 나비의 날개가 파르르 떨듯이 기쁨과 감사로 그 여운이 오래 간직되곤 했다.
그러나 연말을 향해 가면서 더 영향력 있고 영성 있으신 분의 글로 사모 칼럼이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자꾸 불어났다.
이 글이 사모 칼럼의 나의 마지막 글이다. 마지막이라는 애틋함에 여운이 남는다. 좀 더 기도하며, 좀 더 최선을 다해서, 좀 더 재미 있게 글을 쓸 걸. . . 항상 이렇다.
현재라는 삶의 투쟁 속에서는 힘들어 하고 불평으로 허우적거리다가 마지막이라는 순간에 아쉬워하고 후회한다.
12월도 벌써 반이 가 버렸다. 아쉬운 2008년을 보내지 않도록 남은 시간이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좀 더 분발해야겠다.
223. 만남, 장덕언니
221. 증인의 기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