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Mini van을 운전 하시는 안내자가 이정표를 보면서 하는말이 땅끝 마을로 들어 가기 전에 완도 다리를 지나 보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볼만하다고 권한다.

우리 일행은 놀러 가는 길인데 조금 돌아가면 어떠하리 하면서 모두 찬성했다.

완도는 장덕 언니의 고향이다.

내 기억 깊은 속에 묻혀있던 장덕 언니가 완도가 가까이 있다는 말에 불쑥 튀어 나온다.

장덕 언니는 내가 여섯 살 쯤 되던 육이오 전쟁이 끝나던무렵 우리 집안 일을 도와 주기위해 완도에서 온 처녀였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식모 살이하러 왔다고 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열일곱 여덟 정도 되지않았을까, 장덕 언니가 온 후로 우리집이 시끄러워졌던 것 같다.

우선 장덕 언니는 목소리가 컷다.

몸도 커서 일도 잘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처음 우리집 왔을 때는 비쩍 말라서 큰 줄 몰랐었는데 회충약을 먹고 회충을 없앤 다음부터 살이 오르더라고 하셨다.

회충이 너무 많아 덩어리로 빠지는데 장덕 언니 표현으로는 회충 보가 빠져 나가뿌렀다고했다.

낙천적이고 이야기 잘하는 장덕 언니에게 나는 매일 밤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전쟁이 막 지나간 그 시절에는 읽을 책도, 대중 오락이라는 것도 없던 시절이어서 장덕 언니의 이야기는 완도라는 먼곳에 있는 섬을 상상 속에 그려 보게하였고 나의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어렴프게 알게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가 좋아 했던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였다.

제삿날 찾아온 흰 옷 입은 과부귀신, 뱃 사람들을 홀리는 머리 푼 처녀 귀신, 그리고 비오는 날 밤이면 바닷가를 떠도는 도깨비 불을 장덕 언니는 자기 눈으로 똑똑이 보았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도 믿고 있다.

장덕 언니는 우리집에서 시집갈 때 까지 8년쯤 살았다 .

얼굴에 있는 죽은깨가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내 기억 속의 장덕 언니는 나에게 가장 많은

칭찬을 해 준 사람이다.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 했을 장덕 언니는 어떻게 아동 교육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의 자존감을 키워 주었는지,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 놓았으리라 믿고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장덕 언니를 만난건 시집가서 사는 언니의 작은 단칸 방에서 였다.

나는 중학교 2학년었고 언니는 아직 아기가 없을 때 였으니까 시집 간지

몇달 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골목길 언덕길을 어떻게 찾아 갔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언니가 해준 흰 쌀밥에 김치, 참기름을 발라 연탄 불 위에 구운 김 몇장

놓인 점심 상은 냄비에서 넘치던 밥 물 냄새까지 생각 난다.

언니는 몇달 사이에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언니 살 빠져서 좋겠네 하고 내가 철없이 말 했던 것 같다.

응, 나 살 뺄려고 피를 팔았더니 그래.

그 말을 믿었던 나는 정말 철이 없는 아이였다 .

밥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미장이 일을 한다는 언니의 신랑은 서른이 넘은 아무 것도 없는 홀아비라고 엄마가 처음엔 결혼을 반대 했었는데 언니가 좋아서 밤마다 만나러 나간다고 일 나기전에 얼른 결혼 시켜야겠다고 엄마와 이모가 이야기 하시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

그뒤로 언니는 우리집을 찾아 오지 않았고, 우리집도 이사를가고 서로 연락할 수도 없는 세월을 살다가 40년도 더 넘는 시간이지나 우연히 보길도 가는 길에 완도섬을 바로 앞에 보면서 장덕 언니의 환상과 만난 것이다.

완도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서 안내자가 차를 세웠을때는 이때까지 오락 가락하던 비가 굵은 빗방울로 변해있었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고 있었다.

손에 잡힐듯이 육지와 가깝게 붙어, 빗 물과 바다 물에 떠 있는 완도는 장덕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해 보던 멀고 아련한 섬은 아니었다.

너무 오래된 세월만큼 배를 타고 들어 가는 섬, 장덕언니가 떠나 오던날 주먹밥 한 덩이 싸 들고 나오던 가난한 섬, 완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비와 바람에 술렁이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완도를 바라보는 내 머리 속에서는 장덕 언니와 도깨비가 불을 키고 돌아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