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세자리 숫자를 육박하던 대 낮의 온도로 인하여 하루의 일과를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페니텐시아 공원(Penitencia Park)으로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걷는 운동이 더운 여름날 냉수 마시는 것과 같이 상쾌하기에 가능한 한 산책을 하려고 한다.

거대한 조명등처럼 한 가지의 색으로 온 지면을 강하게 내려 비치던 태양이 유유하게 하강하는 낙하산처럼 태평양 바다를 향해 다이빙을 하고 있다.

온 종일 주어진 일에 충실하느라 붉게 상기된 얼굴을 식히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낮과 달리 오늘 저녁 바람은 열대지방의 해양성 바람처럼 감미롭다.

피곤해진 몸을 감싸 안아주는 연세 지긋한 어머님의 푸근한 치마폭처럼 느껴진다.

공원에 나와 걷은 사람들이 많다.

현대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의자생활과 연결되기에 걸을 일이 없어진다.

어떤 종류의 일은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운동과 일은 별개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운동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요즈음은 운동기구가 있는 실내를 이용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산책을 하는 것은 육신의 본향인 땅과 호흡하며 육체적인 운동과 함께 정서적으로 비우며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원에서 한가지 특이할 만한 것은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똥을 처리하도록 비닐 봉지와 쓰레기 통이 준비되어 있다.

공공장소의 환경을 관리하기 위해서 일까?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개가 사람대접을 받을 만한 동물의 천국이라서 일까? 의아스럽다!

개들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하여튼 인상적이다.

공원 중앙에는 알람락 파크(Alum Rock Park)에서 흘러내려와 만들어진 작은 호수가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물결이 저녁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그 위에 품위 있게 앉아있는 듯한 오리 떼들이 부유해 보인다! 넉넉해 보인다!

또 호수 가에 모이를 던져주는 아이들이 있다. 물 위에 떠있는 오리 떼들과는 달리 모이를 먹기 위해 꽥~ 꽥 거리며 야단들이다.

모이를 주는 아이와 모이를 먹는 오리 떼들이 공급과 수요라는 상대적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오리가 먹지 않으면 먹이를 주지도 않을 터인데 먹는 오리를 보는 것이 아이의 기쁨!이다.

먹어주는 오리가 아이에게 배려하는 대가!이다.

이렇게 단순한 데서 기쁨을 찾은 아이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일까?

글쎄, 베풀 때 그저 받아 준다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사는 일이야 말로 흑자 인생일터 인데.

아스팔트 길보다 흙 길이 부드럽다. 더욱 솔잎이나 들풀이 말라서 깔린 위를 걸으면 마치 카페트 위를 걷은 것 같은 폭신함이 있다.

그 위를 걷다 보니 낮의 열기가 급강하면서 온도차로 생긴 축축함 때문이랄까? 들풀 냄새가 난다.

활엽수의 낙엽 냄새도 난다. 일년 내내 낙엽이 떨어져 깔려 있는 것이 캘리포니아의 특색이기 때문이리라.

별로 아침 산책을 해볼 기회가 없어서 비교할 수 없지만 나는 저녁 산책을 즐긴다.

어둠이 안개처럼 서서히 내리면서 서쪽 하늘에 펼쳐지는 노을 빛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 빛에 반사되어 보여지는 산과 들이 분지를 이루고 있는 산호세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운전을 할 때보다 걸으면서 바라보는 자연은 마치 실내 벽의 사면에 그려진 대형 수채화 같이 느껴진다.

산호세 동쪽의 해밀튼(Mt. Hamilton) 산들은 비가 오지 않아서 이미 누렇다.

한국에서 어릴 때 보았던 가을 들역 같다. 이미 추수를 마치고 월동 준비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산호세 서쪽이나 남쪽에 있는 산들은 더욱 짙어지는 녹색으로 물들고 있다. 잎이 무성한 활엽수들이 자신의 풍요를 자랑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같다.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라고 이름 한 것처럼 분지를 이루고 있는 산호세 도시에 같은 기후 조건과 환경이건만 사방을 돌아보면 여러 기후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색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다채로움이 있다.

좀 과장이기는 하지만 거의 4계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낮과는 달리 노을이 사라지면서 저녁은 오직 한 가지의 색으로 칠 해 진다.

'어둠'이란 제 5의 계절 색갈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둠을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서 저녁에 맞이하는 어둠은 안식처이다.

하루 동안의 분주했던 일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허그(Hug)해 주시는 주님의 품이며 옷자락이다.

그 품에서 산도 나무도 새들도 안식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감싸주시는 것이다.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피어있던 꽃들도 신선함을 주는 그린 잔디도 마른 풀도 건조함을 주는 돌들도 다 덮어주시고 가려주신다.

물체의 높고 낮음도 사람 크고 작음도 균일하게 감싸 주신다.

특히 나는 어려서부터 키가 작아서 나를 보신 어르신들께서 재미나는 이야길 하시곤 하였다.

비가 오는 날에 나의 신발 밑에 비료를 넣고 비를 맞으며 좀 걸어다니라고 말이다.

비오는 날이면 마음이 들떠서 손에 빗방울을 받으며 온 동네를 그냥 뛰어다니던 내게 하시던 어른들의 사랑이요 관심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녁에는 어둠으로 키가 작은 나를 가려준다.

이 저녁인 밤에 대하여 시편기자는 지식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시19:2)

태초에 6일의 창조 동안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밤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하시며 밤에 지식을 주고 받으셨을까?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밤을 통해 전해 받는 하나님의 마음이랄까?

낮에 보이는 것들보다 밤에 보여지지 않은 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지식을 깊게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창세로부터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즉,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에 분명이 보여 알려졌나니..'(롬1:20)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만드심'에는 '밤'도 포함해서 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공원 입구에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지기 전에 공원에 있는 것을 피해달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렇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원도 쉬기도 하지만 창조주와 홀로 있는 저녁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비워내고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