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아프리카 오태돈(프리랜서 배우, 영화감독) 1709097989907.jpg "1709097989907.jpg")
아프리카!
내 생애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보엠시어터 대표, 김혜진교수와의 오랜 인연으로 성사된 일이었다. 선뜻 가겠다고는 했지만 출국날짜가 가까와 오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가서 납치당하는 거 아냐? 이 나이에 험한 꼴 당해 죽는 거 아닐까?' 끔찍한 상상이 이어졌다.
남편은, "가는데 위험하지 않은지 잘 알아봐!" 라며 출국 4일 전에 무책임한 말만 던져 불안한 내 맘을 긁었다. 게다가 출국 이틀을 앞두고 온종일 머리가 어지럽고 아팠다. '가지 말까? 이런 상태로 가면 괜히 일행에 폐만 끼칠텐데...' 다행히 두통은 그날로 끝났고 나는 르완다행 비행기를 탔다.
유튜브를 통해 르완다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라는 걸 알고 온 터였다. 천 개의 언덕이란 말이 막연했는데, 와서 보니 이해가 됐다. 어디서든 언덕이 있어 뷰가 정말 멋졌다. 사방이 검은 피부의 사람들로 가득찬 풍경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래서 슬쩍슬쩍 유심히 보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피부색은 정말 색깔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로 인한 사람들의 편견과 왜곡이 얼마나 심한 건지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까이 대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잘 생기고 분위기 있고 멋진 흑인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 나 스스로가 알게된 사실이 있다. 백인이 가장 먼저 늙고 그 다음이 황인, 그리고 흑인(세상이 이렇게 나누니 나도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이 가장 늦게 늙는다는 것. 몇몇 분들의 나이를 물었을 때, 내 눈엔 30대 후반 내지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50대라는 사실에 번번이 깜짝깜짝 놀랐다. 키갈리 거리의 현지인들의 모습은 활기차 보였고 희망이 역동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월드미션고등학교내 보엠씨어터 헌당식에서 본, 무대 위 고등학생들의 전통춤에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 특유의 몸짓, 춤사위가 참으로 아름답고 흥이 천장을 뚫을 지경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춤을 배우고 싶다. 나 역시 이 무대에서 다른 두 배우와 함께 ‘사라 바트만을 위하여’라는 15분여의 짧은 갈라공연을 했는데, 잊을 수 없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비크리스찬으로서 선교사님들의 삶을 가까이서 본 것, 역시 처음이었다. ‘선교사’하면, 막연히 오지에서 선한 일을 하는 크리스찬이라고만 여겼을 뿐 사실 구체적인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선교지, 선교센터를 방문한다고 들었을 때도 그냥 지도상의 한 지점으로만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그 안의 모습은 아무것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무심한 사람이라고 혹 비난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문명의 편리함, 안락함을 뒤로 하고 그 반대의 열악한 환경에서 하나님께 의지해 묵묵히 현지인의 어려움을 도우며 신께 인도하는 모습이 내가 본 선교사님들의 삶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행동과 마음은 내가 따를 수 없는 거룩하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언뜻언뜻 들은 초기 사역자들의 고초가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었다.
수십 년에 걸쳐 고등학교와 대학을 세우고 교회를 지으며 현지 목회자들을 배출하고 교육시키는 선교사님들의 여러 활동과 지도력에 난 정말 감동 받았다. 비로소 연세대학교와 이화여대의 오늘 모습이 그 옛날 미국인 선교사들이 가난과 헐벗음에 찌든 우리나라에 씨앗을 뿌려 일궈낸 사실이라는 것에 난 내 머리가 띵하고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많은 현지의 스마트한 인재들이 한국인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질까를 생각하니 소름이 좍 돋았다. 이곳에서 만난 어린이들, 고아들의 얼굴, 눈동자는 여전히 내 머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흑인 아이들이 그렇게 이쁜 줄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 두명의 머리와 손을 쓰다듬어 주자, 줄줄이 내게 안겼다. 순간 당황했지만 최대한 많이 안아 주었다. 짧은 머무름이었지만 선교센터가 있는 곳의 아름다운 자연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자가 많이 부족해 보이고 행정의 손길이 엄청나게 아쉬운 우간다. 집에서 학교까지 꽤나 먼 길을 걸어가는 학생들과 세렝게티의 끝없이 광활한 자연을 품고 있는 탄자니아. 탄자니아는 우간다에 비하면 훨씬 체계가 잡혀 보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러 방면의 행정력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출발하기 전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은 순전히 뉴스와 후원금을 모금하는 TV 속 영상으로 인해 생긴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걸 세 나라(르완다, 우간다, 탄자니아)를 15일간 다녀온 후 알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외국은 우리나라 만큼 안전하지 않은 곳이고 우리와 다른 문화권이라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다.
내가 이번에 경험한 아프리카는 물자와 사회 인프라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나라들이었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최소한 처음에 가졌던 나의 생각은 얼토당토 않은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염려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우리 미디어에게 사람, 산업, 문화 등 다른 각도에 초점을 맞춰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의 보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4. 2.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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