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집집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집에는 가자미 식해가 있다.

함경도 청진이 고향이신 시어머님께서 미국으로 이민오신후, 며느리인 나에게 전수하신 음식 중에서 그래도 내가 비슷한 맛을 낼수 있다고 생각되는 첫번째가 가자미 식해이고, 나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남편 뿐만이 아니고 시누이들 까지 인정 해 주어서이다.

가자미 식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싱싱한 가자미를 구해야 한다.그리고 날씨가 추워야 가자미 식해의 참 맛이 나온다.

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살 때는 미국 마켓에서 파는, 껍질과 뼈를 다 발라서 얼려 놓은 냉동 가자미를 가지고 담아 보았고, San Jose에서는 한국 시장, 생선 코너에서 파는 가자미로도 담아 보았지만 역시 제일 맛있게 담는 비결은 Half Moon Bay 항구에 가서 그날 잡아 온 가자미를 사 가지고 와서 담을 때였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3, 밥2 가자미 1 비율이다.

싱싱한 가자미나 생태를 구해서 비늘은 잘 벗기고 손가락 굵기로 썰어서 소금에 절여 냉장고 속에서 하루 밤을 재운다.

여기서 비결은 가자미는 작은 싸이즈가 더 좋고, 뼈채 썰어서 담는 것도 좋지만, 뼈는 발라서 김치병 밑바닥에 깔고 가자미의 살만 무와 섞어 담으면, 식탁에서 좀 더 우아한 모습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싱싱한 생태가 나오는 겨울에는 가자미보다 값이 싼 생태가 비싼 가자미하고 똑같은 맛을 낸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무는 채를 써는데 굵게 썰어 소금에 2시간 정도 절여서 한번 씻은 후에 물기를 뺀다.(가자미 식해가 짜면 구제할 방법이 없으니 짜지 않게 절인다.)

무의 물기가 빠지는 동안, 절인 무의 2/3정도 흰 쌀밥과, 소금에 절인 가자미를 꼭 짜서 마늘, 생강, 파, 고추가루, 멸치액젓을 넣고 버무린다.

물기가 빠진 무를 여기에 넣고 다시 한번 버무리면서 간을 소금으로 조절한다. 삭으면서 밥알이 고추가루를 흡수하니까 빨간색이 되도록 고추가루를 넉넉하게 넣어야 한다.

시장에서 파는 가자미 식해는 조밥을 넣고 무의 양이 작은데 비해서, 우리집 시어머님 방식은 흰 쌀밥을 넣고,굵게 채썬 무를 가자미보다 훨씬 더 많이 넣는 것이 특색이다.

식해가 익는 기간은 두 주일이면 충분하다.

다만 오래 두면 시어지니까, 병에 담을때 작은 병으로 나눠 담아서 먼저 먹을 병은 실내 온도에서 익는 냄새가 날 때까지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은 다음, 밥 알이 삭았는지를 살피면서 먹기 시작하고, 나중에 먹을 병은 하루 밤만 (반나절만) 실내 온도에 두었다가 냉장고에서 천천히 익어가게한다.

이런 음식은 담는 것도 재미 있지만 나눠 먹을 때 더 행복하다.

가자미 식해가 맛있게 익으면 나는 시누이도 불러서 같이 먹는데,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솜씨도 이야기 하면서, 우리집 가자미 식해가 지금까지는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지만, 딸도 없고 며느리도 한국여자가 아닌 나를 보며, 다음 세대에는 누가 이어 갈지 걱정 아닌 걱정을 둘이서 할 때도 있다.

내가 이런 말을 아들에게 하면,나의 큰아들은 무슨 걱정이냐고 자기가 배우겠다고 나선다.

역시 나는 구시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음식 대물림은 꼭 며느리나 딸에게만 물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걱정을 버리고, 내 손 맛이 늙기 전에 아들에게 전수 해 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10월이 되었으니 서늘해지면 날 잡아서 Half Moon Bay로 가서 싱싱한 가자미를 사 와야겠다.

Santa Cruz로 갈 수도 있지만 Half Moon Bay로 가는 것은, 가는 길에 SAM's Chowder House에 들려, 이 근처에서는 제일 맛있는 Clam Chowder를 사 먹을 수 있어서이다.

이집의 Chowder는 조금 묽으면서도 가벼운 뒷 맛이 일품이다.

바다가 발밑에 보이는 아웃도어 페디오에서 Chowder를 먹으며 한시간 산길을 넘어 온 울렁증도 달래고, 좋은 친구가 동행한 날이면 목도리를 두르고, 바로 옆 방파제 위에서 바람을 맞는 것도 행복하다.

맛있는 가자미 식해가 만들어지는 준비 운동이 되는 셈이다.

가자미 식해를 먹으면서 가슴이 아프게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어느해였던가, 남편의 친구가 출장와서 우리집에 들린 적이 있었고, 마침 가자미 식해가 알맞게 익어 있었는데,그는 그날 저녁 밥상에서 다른 반찬은 먹지 않고 가자미 식해만 한 병을 다 끝내고 떠났다.

그의 부모님 고향도 함경도 청진이었고, 한국을 떠나 온지 30년만에 처음으로 가자미 식해를 다시 먹어 본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번 더 가자미 식해를 먹고 가겠다고 하더니만, 아직까지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가 며칠 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날이 차가워져서 가자미 식해를 담아 보고 싶은 철이 되면, 가자미 식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 나게 하고, 그리워 하게 만든다.

맛있는 음식은 사랑도 키워 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