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해마다 새해 첫날이 온다. 첫날이 올 때마다 올해는 작년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야지 다짐하면서도, 한해가 가져 올 아직은 모르는 시간과 공간의 위엄이, 어린시절 하얀 도화지를 앞에 놓고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닥아 오고는 한다.

하얀 도화지 위에 첫 금을 긋기 전까지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모르는 두려움과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 종이가 주는 위압감이 함께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보면 그 아이의 성격이 재미있게 나타난다.

종이를 앞에 놓고 한참을 생각하며 그리는 아이도있고, 그냥 쓱쓱 그려 나가는 이이도 있다. 물감을 진하게 한번에 칠하는 아이,연하게 조심 조심 덧 칠해가는 아이, 어떤 아이는 그림을 그리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종이를 꾸겨서 바닥에 버리고 새 종이를 꺼내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어떤 아이는 실수한 부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하고 종이가 찢어지도록 지우고 다시그리기를 반복한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시절,내 친구중 한아이는 도화지 귀퉁이에 아주 작게 그림을 그려 놓아서 항상 선생님이 가운데다 크게 그리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때 그 친구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물감이나 도화지를 사는 것이 슆지 않았었다한다. 몇 번을 조르고 졸라 사 온 물감과 도화지가 그녀는 너무 아까워서 차마 쓸 수가 없었다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고백하였다.

아이들의 이 작은 행동들은 그들이 자라서 인생을 살아 가는 모습의 패턴이 될 것이다.

좋은 그림이 되기위해 지켜야하는 몇가지의 불문율은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불문율과도 흡사하다.

그래서 인생을 종합예술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신 교수님이 계셨다. 내가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을 보시면서. 그림은, 조금 아쉬운 구석이 보이는 상태에서 붓을 놓고, 그 여운을 바탕으로 다음 그림의 시작을 삼아 보라는 충고를 하셨다. 정말 나에게는 꼭 필요한 충고였다. 나는 그 뒤로 모자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미숙함과 유치함이 틀리다는 것도 배워갔다. 그리고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해." 이런 노래도 18번이 되었다.

새해라는 하얀 도화지를 앞에 놓고, 내가 그림 그리는 심정이 떠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둘은 너무도 닮아있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면 당장 하얀 종이를 앞에 놓고 그림을 그려 보시라. 그림을 배울 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다섯 기둥이있다.

첫번째는 무었을 그려야 할지 주제를 잡는 일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주제인지 나무가 주제인지를 정한다.

너무 많은 주제는 피카소도 피한다. 그리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연관성이 없는 너무 많은 주제를 가지고 빈틈도 없이 빽빽하게 그려 넣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산만한 성격이기 슆다. 집중력을 키워 주기위해 가는 붓을 가지고 선을 따라 그리는 연습을 시키면 도움이 된다. 두번째는 정해진 주제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기도하지만 그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이해시키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살아있는 그림과 죽은 그림의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 전, 나무를 만져 보게하고 잎사귀의 냄새를 맡아 보게 해 주고 나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도 하게 한 다음 그리게 하면 그 나무에 눈도 그려 넣고, 웃는 얼굴도 그려 넣고, 뻣어 나간 가지에 손가락도 그려 넣는다. 예술은 이해에서 시작된다.

세번째는 구성이다. 가장 중요한 주제가 그려지는 위치와 크기는 아주 민감하게 작용하여 제목이 되기도한다.

예를 들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에서 별의 크기가 보통 크기었다면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고 그처럼 열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흐는 가장 먼저 눈에 띄이는 자리에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 할 정도의 크기로 별을 그려 넣고 제목도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아이들의 그림에서 이런 구성은 더 슆게 설명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자기 옆에 그린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그 아이와 엄마, 아빠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림 속의 구성에서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를 가름해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도,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알고 누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마스터이다.

네번째는 진행이다. 바탕을 먼저 칠하고 밑그림 위에 색을 칠하면서 점점 그림의 성격이 드러날 때 쯤, 선생님은 항상 주의를 준다. 한 부분에만 매달려서 다른 부분과의 발란스를 잃으면 않된다고. 예를 들어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면, 눈만 먼저 완성 해 놓고 코를 그린다 거나 하지말고, 눈 코 입 머리카락이 같은 속도로 드러 나면서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완성 해 가라는 말이다. 하모니는 그림 속의 미숙함을 감춰 준다.

실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초보나 프로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배우는 것이 초보를 벗어 나는 일이기도하다.

초보는 실수를 하면 실수 한 부분에 집중하여 고치려고 매달려 있거나 꾸겨서 버리고 새 종이를 꺼내어 다시 그릴려고 한다. 그러나 프로는 실수한 부분의 주위를 완성 해 가면서 실수한 부분이 눈에 거슬림을 주지 않도록, 다른 부분과 어울림을 주도록 함께 진행 해 나간다. 대부분의 실수는 고칠 수 있으니 실수 할까 겁을 내며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또 좋은 실수라는 것도 있다. 실수 한번 잘하면 발명도 하고 발견도 하고, 팔자도 바꾼다.

나도 한번은 실수로 캔버스에 물감을 쏫았는데, 물감의 색들이 서로 얽히고 번지면서 자기네들 끼리 얼마나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 내는지, 그 다음 부터는 내가 종종 쓰는 테크닉이 되었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열정을 가지고 아름답게 그린다. 혼을 다한 열정이 마스터 피스를 만든다. 미친사람이라는 별명은 무엇에 미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칭찬이다.

실수가 있고 미숙한 솜씨의 그림이라도 열정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은 아름답다.

사랑이 뜨거운 가슴을 만든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누구나 피카소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가슴에 사랑을 품고 열정을 쏫아서 미숙한 그림을 그릴 수는 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림일 것이다.

새해를 맞아 새달력으로 바꿔 달면서 2011년에 나는 또 어떤 날들을 그려 나가려나 기대해 본다.

미숙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