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벨 소릴 듣고 전화를 받자 “엄마, 저 떠나요…..”하였다. LA에서 신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큰 아이가 운전하고 내려 가면서 전화를 하였다. 어제 밤에도 나는 딸아이가 동부로 떠나는 데도 겨울 학기 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가느라고 아이를 보지 못하고 역시 전화로 인사하였다. 각자 처한 환경이란 형편에 따라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내면서도 편리한 방법으로 인사를 하고 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품안에 있을 때에나 자식이다'라고 하시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실감난다. 아이들이 대학교를 타 지역으로 가면서 절기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만나 볼 수 없다. 멜 이나 전화로 자주 소식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게 된다. 그렇게도 보고 싶던 아이들이 오면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텅 비었던 집안이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별로 사용하지 않는 하나의 가구처럼 구석에서 놓여 눈길을 끌지 못하던 피아노가 주인을 맞이하는 순간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맞은 화초처럼 생기를 되찾는다. 아이들의 손 때가 묻은 흑백 건반에서 음표가 솟아난다. 또한 딸 아이는 어릴 때 신었던 발레 신발을 꺼내 신고 발 끝으로 쫑 쫑 걸으며 집안의 공기를 가르고 다닌다. 온 집안이 나풀 나풀 춤을 춘다. 또 다른 아이는 코 노래를 부르며 아래 층, 위 층으로 다니며 소파에 누웠다 앉았다가 하면서 집안을 빙빙 돌아다느라 분주하다.

조카아이까지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오면 각자의 친구들이 몰려온다. 두 서너 명씩 와서 새벽까지 이야기 하다 자고 가곤 한다. 그런데 이 번에는 큰 아이가 자기보다 열 살도 더 어린 학생하나를 데리고 와서 일 주일 이상 자기와 한 방을 쓰며 지내게 되었다. 그 학생의 엄마와 누나는 선교를 떠났기에 집에 혼자 있어도 될 법적인 나이는 지났지만 성탄과 신년을 혼자 맞이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절기에 자신의 휴식과 기쁨을 찾는 것이 우선인데 이 학생의 엄마와 누나는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 전부를 헌신한다면서 자랑스러워 했다. 나 역시 그 학생의 가족을 잘 알고 또한 이 번 선교의 기도 후원자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아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큰 아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학생을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이다.

아래로 여자 사촌과 두 여자 동생이 있지만 남 동생을 원했던 아들이기에 그 학생과 함께 지내게 되어서 횡재를 만난 듯 큰 아이의 얼굴이 보름달 만큼이나 밝았다. 외출이나 운동이나 게임이나 무엇을 하던 그 학생을 데리고 다니며 섬세하게 돌보아 주는 것이었다. 특히 그 학생이 아빠가 없다고 늘 관심을 가지고 보아왔던 것이다. 그 학생 뿐만 아니라 밝은 곳보다 그늘 진 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만나주고 교제하고 상담하곤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물론 목회의 길을 갈 아이이지만 마음 씀씀이를 보면 주님의 마음을 참 많이 닮았다.

그 학생의 엄마가 돌아오고도 푹 쉬시라고 이틀 늦게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하는 말이 “엄마, 그 학생이 우리 집에 와서 지낸 시간들이 정말 좋았대요. 제 생각에는 무엇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보았을 거에요.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아빠의 인도아래 신년 예배를 드렸던 것을 통해서요. 그 아이는 그런 아빠를 실제로 보질 못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들이 신년 계획과 소망들을 서로 나누고 또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아빠가 우리 하나 하나 안수하며 축복 기도한 것 말이에요….”하면서 말 끝을 흐렸다.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아도 그 다음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아들은 자신이 어릴 때는 잘 인식하지 않았던 가족관에 대해서 집을 떠나 살면서 여러 부류의 친구들을 접하면서 깨달은 것 같다. 특히 큰 아이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께 많은 성도님들이 상담을 해오는 가정들을 간접적으로 보면서 한 가정에 가장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감지해 보게 된 것 같다. 뚜렷한 아버지상을 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어느 날 아버지가 되었을 때 당면하는 문제들 말이다. 큰 아이 자신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기에 늘 아빠의 신앙과 성실함에 대해 지켜보며 감사하곤 한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도착해서 연락해라…사랑해, 아들!” 하며 전화를 끊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이 있을 동안에는 있어야 될 물건들이 제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나

막상 떠날 때는 오기 전에 있었던 위치로 침실과 거실 등 반듯하게 정리해 놓고 떠난다. 그래서 지난 밤 늦게까지 정리하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떠나는 아이가 졸지 말고 운전하기를 바란다.

주님! 어느 부모인들 자식 자랑이 없겠습니까? 자식 자랑하는 대회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도 우열을 가리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아이들 모두 분에 넘치는 당신의 선물입니다! 지금 떠난 큰 아이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거리적인 공간과 시간적인 공간이 내내 당신과 인격적으로 만나서 교제하는 지성소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