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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면 우리집 뒷산에는 아몬드꽃이 핀다.

언제 피어났는지 어느날 쳐다 보면 하얗게 피어나 있다.

처음엔 매화인가 하여 나뭇가지를 살펴보았더니 매실이 아닌 갸름한 씨가 나와서 캘리포니아 아몬드인 줄 알았다.

이민 1세대들에게는 복사꽃 살구꽃이 피는 고향의 봄이 그립다.

이 집으로 이사와 처음 심은 나무가 복숭아와 살구나무였던 것도 그 추억 때문이었다.

작은 나무를 사다 심었는데도 3년쯤 지나자 제법 나무 모양새가 잡혀가고 꽃을 잎보다 먼저 피우며 우리를 즐겁게 하여 주었다. 꽃이 질 때가 더 예뻤다.

어린잎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꽃잎은 바람에 날려 떨어진다.

자세히 보면 연분홍색이지만 그냥 보면 하얗다.

해마다 마치 새색시처럼 어린 나무는 수줍게 꽃을 피우고 아쉽게 열매를 길러내며 커 갔다.

살구꽃이 피기 시작하면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상치와 쑥갓씨를 뿌리면서 봄을 맞이하고, 도화꽃의 붉은 망울이 터지면 우리는 여린 처녀들의 뺨을 이야기하며 고향의 봄을 추억했다.

그러나 이런 좋은날은 길지가 않더라고 하지 않던가, 고향의 봄을 그리며 심은 꿈나무 속에 진드기가 달라 붙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남편이 진드기 박멸약도 뿌리고 병든 가지를 잘라 주기도 하면서 몇해를 넘겼으나 진드기의 공격은 세력을 더해 갔고, 개미 군단까지 합세하여 나무를 점령하여 갔다.

멀리서 보면 더 좋은 것이 가끔 있다.

미국 동남부, 1930년대 이야기다.

주인공 기차 기관사는 은퇴 할 때 까지 수십년을 기차를 몰고 한 마을을 지나게 된다.

기적 소리가 나면, 작지만 평화롭게 보이는 집에서 한 여인이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뛰어 나와 기차가 눈에서 멀어질 때 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다.

그 집에는 예쁜 꽃밭도 있고 아름드리 나무도 그늘을 주고 있었다.

기관사는 그 마을이 가까와 지면 기적을 울리고, 어김없이 여자와 아이는 달려 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계절이 바뀌고, 아이가 자라 나서 처녀가 되었어도 그들은 기차를 바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차츰 기관사의 마음 속에 그들이 가족이라고 느낄 정도로 부드러운 애정이 생기며, 그 마을과 그 집과 두 여인을 만나는 시간에서 특이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나이들어 기관사가 은퇴를 하고, 가족들도 그의 곁을 다 떠난 어느날, 그가 젊었을때 자기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두 모녀를 생각하며, 그가 힘차게 기적을 울리던 때, 그를 반기러 달려 나오던 두 여자를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을 한다.

마을과 집은 쉽게 찾아 갔다. 눈에 익은 나무가 서 있었고 집 뒤로 꽃밭이 보이고, 멀리 자기가 매일 오가던 기찻길도 보였다.

늙은 기관사는 문을 두드리며 가슴을 두근거렸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문을 열고 나온 여인은 생활에 지친 얼굴과 불쾌한 말투로 의심스럽게 그를 쳐다 보았고, 집안은 지저분했고, 어머니가 부르자 투덜거리며 나온 딸은 버릇이 없었다.

실망하며 돌아 가던 늙은 기관사는 그때 갑자기 자기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익숙하게 운전하던 기차 기관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가슴 속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그 추억들 마저도, 이제는 우주의 한 구석 어딘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집의 진드기가 붙은 복숭아, 살구나무도 어느해 담장을 새로 하면서 함께 베어져 나갔다.

늙은 기관사처럼, 우리 부부에게도 고향의 봄은 오직 추억 속에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일까,

나무가 베어져 나갈 때 복사꽃의 봄을 그리던 꿈도 우주의 한 구석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니,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2월이면 뒷산에서 피어나는 아몬드꽃이 더 반갑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피어 나서 더 예쁘다.

진드기 걱정 없어 너무 좋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조금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점점 더 내 곁에서만 빙빙 도는 남편도, 조금만 더 거리를 두고 옆에 있으면 더 이쁠텐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