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프론티어

봄이면 철새가 돌아 오기 시작한다. 보스톤 근처에 있는 입스위치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늪 지대에는 철새들이 안심하고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를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 강 근처에 아들의 집이 있어서, 나에게도 카누를 타고 늪 지대를 돌아 다닐 수 있는 행운이 가끔 주어 진다.

5월에서 6월의 어떤 주간에는 알을 품고 있는 새들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노란 줄을 쳐 놓고 통행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고, 소음도 내지 못하도록 경고문을 부쳐 놓을 때도 있다.

늪지대 옆에는 100년도 넘은 Farm House 하나가 서 있다.

짭질한 바닷 바람에 페인트 색은 바래 있지만 창틀에 놓인 화분에 줄 지어 핀 꽃 색갈이 그래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집이다.

이 집에는 이 곳을 찿아 오는 철새와 야생 동물을 연구하는 Biologist, Bill Sargent 가 살고 있다.

Bill은 가끔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해, 그 지방 생태계에 대한 질문에 응답도 해 주면서 책 싸인 행사를 갖는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찾아 오는 'Bobolink'라는(발음은 밥-오-링크 라고 한다했다) 새 이야기가 아주 인상 깊었다.

4월에야 겨우 날이 풀리는 보스톤 근처에 햇볕이 따사로워지면, 남쪽에서 숫컷 '밥오링크' 새들이 제일 먼저 날아들기 시작 한다. 미국 남쪽이나 자마이카 까지 갔거나, 멀리는 브라질에서 겨울을 지내고 날아 오는 철새다.

크기는 한국의 참새만 하지만 먼 여행을 할 수 있을만큼 강한 검정색갈의 새다.

그리고 그들은 키큰 풀밭에, 찬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물기도 없으며,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은밀한 명당 자리를 찾아 집을 짓는다. 한주나 두주일 후 숫컷들이 집을 다 지어 놓을 때 쯤 암컷 '밥오링크' 새들도 도착하기 시작 한다.

'밥오링크'는 노래를 잘하기로 유명한 새다. 검은 턱시도를 앞뒤로 돌려입은 오페라 가수처럼 뒷통수에 하얀 보우타이를 맨 핸섬한 숫컷들은 노래와 춤으로 자기가 지어 놓은 집에서 암컷을 유혹하지만, 암컷들이 찾는 것은 유혹하는 노래 소리 보다도 숫컷들이 지어놓은 집과 장소를 본다고 Bill은 말했다.

암컷은 돌아 다니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집으로 들어가는데 만약 숫컷이 받아 들이면 그 곳에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면서 8월말 떠날 때까지 지낸다고한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남자들이 다 준비 해 놓으면 늦게 도착하여 제일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잡는 얌체같은 재미가 얼마나 쏠쏠할까, 사랑보다는 새끼치기에 편한 장소를 먼저 생각하는 암컷 '밥오링크'의 이성적 판단력이 부럽기도하다.

그러나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나쁜 법이 세상 일이다.

좋은 집은 경쟁자가 많아서 크고 좋은집을 지어 놓은 능력있는 숫컷은 ,두세마리, 어떤 놈은 네마리까지도 암놈을 한집에서 데리고 산단다.

Bill은 '밥오링크'가 새 중에서는 드물게 일부다처제라고 하였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면서, 나도 당신이 나를 위해 춤추고 노래 해 주는 것 보다는 30년 된 우리집 화장실을 고쳐 주는 것이 더 매력적일 것 같다고 말 해 주었다.

남편은 지지않고, 화장실 잘 고쳐 놓으면 젊은 여자들이 서너명 달려들텐데 좋겠냐고, 그래서 그 새 이름이 바보 링크라고 맞 선다.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들이 화장실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기원전 18세기경에 지어진 크레타 섬의 크로노스 궁전 터에는 수세식 화장실 흔적이 있다고 한다. 3천 8백년 전에 벌써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도 여왕의 입김에 의해 지어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대식 변기는 영국 엘리지베스 1세 시대에 시인이자 발명가인 죤 해링턴(1561-1612)이 두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자기집에, 또 하나는 여왕의 리치몬드 왕궁에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커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8세기에 와서 독일인 죠지프 브라마가 개선하여 만든 수세식 변기가 널리 보급되어 6000개가 영국에서 팔렸는데 오히려 템스강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만조 때는 낡은 하수관을 타고 건물의 지하실로 역류되기도 하는 부작용이 컷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상 하수도 시스템이라니 발명은 또 하나의 발명을 낳게한다.

내가 처음 수세식 화장실을 본 것은 48년전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였다.

머리 위 물탱크에 달린 줄을 잡아 다니면 쏴하고 물이 내려와 씻어 나가는 것이 무척 신기하였다.

한국에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던 초창기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벌리는 해프닝이 많았던지, TV 연속극에서도 시골 사시는 시어머니가 서울 아들집에 왔다가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수돗가에 실례하는 장면도 있었다.

한국은 이제 화장실 문화도 세계적으로 앞서 간다.

내가 지금까지 가 본 화장실 중에서 가장 환상적인 화장실은 제주도에 있었다

그것도 두개나 있었다.

하나는 설록차 를 시음하고 판매하는 연구소에 있었고, 하나는 유리 공원 속 야외에 세워진 유리로 만든 화장실이었다.

유리 공원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유리로 되어있는 공원이다.

유리로 만든 나뭇잎이 달린 가로수 길을 따라 가다가 유리 꽃밭을 사이에 두고 유리문을 열고 들어 가면, 바닥도 천장도 유리로 만들어져 있는, 그렇지만 조금도 불안하지 않은 환상적인 화장실이 그곳에 있었다. 동화 속의 공주가 된 듯한 착각을 주는 곳이었다.

반면에 설록차 연구소의 화장실은 품위 있고, 경치 좋고, 여유 있고, 냄새 좋고, 그 속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를 멋지게 만들어 주었다.

인간은 화장실 문화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있나 보다.

30년 묵은 우리집 화장실 타일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요즘, 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집을 짓는 '밥오링크'를 생각하고, 인간과 새를 거의 동등하게 생각 하면서,뉴잉글랜드의 자연과 야생동물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 Biologist, Bill Sergent를 생각한다. 백년도 넘었다는 그의 Farm House 창가에 핀 꽃을 떠 올린다.

그는 봄이 찾아 오는 4월이면 언제쯤이나 '밥오링크'가 돌아와서 마른 풀 속에 집을 지을까, 카누를 타고 입스위치 강을 오르 내리며 늪지대를 망원경으로 살피고 있을 것이다. 대리석 타일로 꾸며진 화장실 같은 것은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연과 어울리면 그 것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밥오링크' 새라면 화장실을 아름답게 지어 놓은 숫컷의 둥지로 날아 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