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카온자 (Kayonza)
연로 하신 목사님들이 하나밖에 없는 양복을 곱게 다려 입으시고 나같은 사람의 강의를 듣기 위해 40여명 정도 모여앉아 계신 광경에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다.
수백 년 동안 오랜 식민지 생활에 잘 길 들여진 무력함과 온순함이 선교센터 안에 첫발을 들여 놓는 순간 느껴졌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전기불도 없는 어두운 교실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며칠간의 피곤하고 불편했던 여정들이 그들의 강렬하고 진지한 검은 눈동자들과 마주치는 순간 다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 이래서 내가 여기에 왔구나! 감격스러움이 나의 온몸을 휘감았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강의 첫 시간을 시작했다. 수강생들이 카온자 (Kayonza) 마을에 거주하시는 목사님, 사모님, 전도사님, 장로님, 집사님들 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국에서 성경적으로 알려진 ‘왕의 재정’과 재정(Accounting)을 세미나 하러 왔다고 하니까 교실 안에서 비교적 잘생기고 키가 큰 에드워드가 일거리가 없고 돈이 없는데 무슨 재정이냐고 비아냥거리니 모두 따라 희죽희죽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바로 뒤에 앉아 계신 목사님이 “우리는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나, 아무 것도 없이 살다,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 것도 없이 간다”라는 말씀에 모두 교가처럼 재창하더니 웃기 시작하며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며 단언 해버리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불 같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가난이 무슨 자랑이냐? 왜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대물림 하려 하느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 당신들의 골수까지 베어있는 사고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 구질 구질한 가난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없다는 것만 바라보고 한탄하는 시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자. 건강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 형재, 자매가 있고 무엇보다도 우주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 부정적이며 패쇠적일 수 있느냐? 나 한테 믿음은 영생에 앞서 오늘을 잘 살게 하고자하는 희망이다. 기독교는 뿌리는 것을 거두는 신앙이다. 잘 살고 싶으면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을 돕자, 건강하고 싶으면 병든 자를 돕고, 지식을 쌓고 싶으면 가르치자. 영어하는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고, 컴퓨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컴퓨터를 가르치고, 봉재하는 사람은 봉재로, 도움을 물질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적용하자. 나라가 우리를 못 도우니 서로들 더 협력해야 되지 않는가? 당신들은 여태까지 무엇을 뿌리고 가꾸고 살았는가?
첫 날부터 이렇게 시작된 나의 강의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처절한 절규와 훈계에 가까운 부르짓음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르완다, 우간다, 탄자니아에서도 아무 거부 반응들이 없었다. 언어, 피부, 문화가 달라도, 가슴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은 ‘세계언어’라는 걸 깨달았다. 모두가 하나로 조율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매일 매일 눈물이 나도록 학생들이 뜨겁게 열광하며 열중해 주었다. 마음속 뜨거운 열기가 목 줄기 까지 타고 오름을 첫 강의부터 느꼈다. 친구인 선교사 사모가 옆에서 강의실을 들락거리더니 너의 세미나는 강의가 아닌 부흥회라고 추켜 세워줬다.
강의를 마치고 비포장 황토땅을 밟으며 걸어오는데 간밤의 뿌려진 비로 담장 나무들이 새순처럼 곱게 단장하고 있었다. 울타리 넘어 집집마다 펼쳐진 빈곤에 비해 카온자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단아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르완다는 참 깨끗해서 좋다고 이야기했더니 통역관 조셉이 자랑스럽게 매 세 번째 주는 모든 공무원과 시민들이 청소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정책 상인지, 조경에 신경을 쓴 것이 한 눈에 느껴젔다. 아마도 1994년도에 있었던 현 근대사에 가장 큰 오점으로 남겨진, 피비린내 나는 동족 대학살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셉한테 조심스럽게 아직도 투치족과 후투족의 갈등이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자기도 그날의 희생자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었지만 이제는 어느 부족이라는 관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손가락을 치켜 세워들며 우리는 르완다인 한 민족밖에 없다고 이야기 했다.
파랗게 무성해져 가는 열대 나뭇가지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그날의 상처가 힐링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상냥한 조셉은 이번 주말에 자기 결혼한다고 처음보는 나한테 틈만 나면 계속 상기시켰다. 대학에서 재정을 전공하고 전도사 일을 하며 KBBA에서 강사로 일하는 소위 이 나라의 인테리라고 할수 있는 조셉한테도 수백 년간 대물림 한 “GIVE ME” 구걸근성이 몸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셉한테 내일 아침은 7시에 숙소로 와 아침을 같이 먹고 가자고 했다. 메니저한테 아침식사를 정각 7시에 먹게 해달라고 거듭 거듭 부탁을 했다. 아침이 늦어 오늘 강의 시간에 겨우 도착했다며 내일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 했다.
새벽 1시부터 눈이 떠졌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기쁘고 감사했다. 그러나 저들의 가난과 무지, 오랫동안 몸에 배어져 있는 삶의 고달픔과 한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의 뼈 속까지 침투해 무한한 슬픔으로 빠져 들었다.
일어나서 강의 책들을 다시 한번 재점검해 본다. 이들한테 재정보다 더 중요한건 할 수 있다는 자립적인 의지와 희망이라고 강의 첫 날 느꼈다. 두 번째 날 강의 스케줄로 잡혀 있었던 (빚)(Debt)정산 재정은 다음 날로 미루고 일과 자아 독립에 강의의 무게를 실어 가기로 생각하고 강의 이론을 조금씩 바꾸었다.
새벽 내내 비가 오는데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1시간씩 걸어온다는 목사님들이 생각이나 통학시간에는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7시에 식당에 내려갔는데 불도 켜 있지 않고 아침 식사는 물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직원이 나를 보고서야 불을 켜고 상차림을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 늧을 것 같다고 메네저한테 이야기 했더니 미안한지 식사 후 선교센터까지 자기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밥을 먹고 가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도 시간만 조금 당겨졌을 뿐 아침 식사는 여전히 늦게 나왔다. 그렇게 잔소리를하고 이야기를 해도 한 번에 수정되지 않는 데가 아프리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 오기전에, 오랫동안 가르치신 강사님한테 가르치는것 중에 가장 힘든게 무엇이냐고 여쭈었더니 시간관념이 없다는 것을 말씀 하셨다. 1시간 점심시간을 2 시간 이상 하는 학생들, 등교 시간, 쉬는 시간, 도대체 아프리카 사람들은 시간개념이 없고 또 아무데나 버리고 정리 정돈을 모른다고 말씀 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 16:10) 왕의 재정, 이번 강의 핵심인 신실한 청지기 직분을 내세우며 철저한 시간관념이 청지기 케릭터의 중요한 한 부분임을 계속 강조했다. 시간은 돈이며, 한 사람이 1분 늦게 들어오므로 지금 있는 43명의 집중을 분산시키고 43분을 잡아 먹는다. 1분이 아니라 43분이다. 또 이 강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 온 나한테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렇게 다구치며 나 또한 스스로 먼저 본을 보여야지 하는 생각에 강의 시간 30-40분 전에 선교 센터에 도착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점심시간도, 쉬는 시간도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자리를 지키며 다음 강의 내용 등을 칠판에 적어 놓고 게속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첫 강의 다음 날부터는 30분 전부터 60% 이상 학생 들이 몰려들고 수요일 정도면 90%의 학생들이 강의 20-30분 이전부터 모여들어 숙제, 기도, 말씀, 뜨거운 찬양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 점심시간이 엄격하게 준수되었으며 서로들 주의를 주는 것도 눈에 띄였다.
선교 센터에서 재정을 가르키라고 부탁했는데,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나의 마음은 자아 독립 콘텐츠로 치우쳐 있었다. 5일 중에 반나절 정도 시간을 할애해서 가르쳐야지 하며 조금 준비했던 자아 독립 콘텐츠가 이번 세미나에 제일 큰 핵심이 되었다. 카온자 첫 강의 점심 시간후, 반에서 제일 잘 차려입은 젊은 전도사가 자기를 스판서해 줄 수 있느냐고 처음 보는 나한테 요구해 온 거나, 주말이 자기 결혼이라고 일주일 내내 계속 상기 시키며 간접적인 결혼 선물을 요구하는 조셉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랫동안 식민지에서 곧 이어진 불안한 군사 독제 정치로 수동적인 사고 방식과 노예 근성에 젖어 있었다. “도와 주세요”를 아무 거리낌 없이 무중구(외국사람)만 보면 이야기하고 세계 각국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이 가난한 이들의 당연한 삶의 수단이 되었다.
대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의 독립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국가들이 약화되면서 1960년 초반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반 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구걸 문화’는 아직도 뿌리 박혀 그들의 슬픈 전설을 오늘도 노래하고 있었다. 창피스로움과 부끄러움이야 말로 인간이기에 가질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감정인데, 그 존엄성이 오랜 식민지 생활로 말살 된것이 이 들의 가난과 무지보다도 더 슬프게 느껴젔다.
계속 퍼 부어 주어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는 아프리카 선교의 딜레마. 그런데 준비해 온 왕의 재정, 자아 독립, 목적이 이끄는 삶, 일반 재정, 콘텐츠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뤄 생각지도 않은 변화들을 겪게 되었다.
자아/재정 독립의 완성은 확실한 비존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의 내용을 접목시켜 강의를 풀어 나갔다. 첫 날 숙제는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묵상, 삶의 비전과 개인 생활비 계획서 작성해 오기 등이었다. 왕의 재정, 노동(Work)에, 자아독립을 투여시켜 처음 이야기하는데 조셉이 self reliant(자아 독립)이란 말을 이해 하지 못했다. 독립적인,창조적인,성실한..등을 설명하는데 자기네 르완다어로 길게 설명하더니, 갑자기 교실이 웅성 웅성 시끄러워짐을 느꼈다. 자기네끼리 한참 이야기하더니 자기네는 자아 독립이란 말이 없다는 충격적인 말을 해 주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대통령이 실시 할려는 나라 켐페인이라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흐른다’. 목사로서, 성도로써 어떻게 신도들의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주며 자주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가 이번 세미나 프로젝트가 되었다. 매일 그 프로젝트를 구체화시키고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 찿기를 숙제로 내주고 구룹으로 의논하며 발표회를 하게 하였다.
한 그룹은 마태복음 25장의 예를 들며, 자기네가 여태까지 미련하고 게으르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달란트를 묻고 살았다고 고백하며, 앞으로는 외국 구호품에 의지 하지 않고 살겠다. 어떤 그룹은 가장 손 쉽고 적은 땅으로 할 수 있는 버섯 농장을, 다른 그룹은 닭 농장을 하겠다며 자세한 예산과 팀워크 계획안을, 선교센터 앞마당에 감자 밭을 만들겠다 등...
구호품을 의지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는 대다수 의견들을 내놓았다. 할렐루야!! 자아 의식, 자아 문제 발견, 자아 존엄성 회복, 홀로서기.... 매주 마지막 날 발표회를 들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 뜨거운 눈물과 기쁨의 평강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방황하며 살던 내 삶에도 목 마르지 않는 샘물이 치솟아 오름을 느꼈다. 시들었던 내 영혼이 이 들과 함께 소생 되어 감을 느꼈다. 주님 감사 합니다, 이 들과 저의 뜨거운 맘이 오래 가게 도와 주시 옵소서.
두 사람이 한 사람 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희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9-12).
경제 자원, 지식, 숙련, 희망이 고갈된 아프리카는 홀로 선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현실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오직 상부상조만이 살 길이고 매일 전도서 4:9-12절을 칠판에 써놓고 강조하고, 항상 떠나는 날 마지막 말씀의 부탁으로 남겨 주었다. 카온자 강의를 마치기전 날, 센터를 당담하시는 아이작 목사님한테 염소 여덟 마리를 사달라고 부탁하며 내일 강의 끝나기 전에 학생들한테 깜작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염소는 5개월에 새끼를 2-3마리씩 낳는다고 목사님이 말씀해 주셨다. 전날 밤 학생들이 기뻐할 생각에 내가 더 흥분되어 잠마져 설쳐다. 네 그룹에 두 마리씩 나눠 줄 예정이다. 내가 주는 작은 선물이고 또 하나의 프러젝트이다. 희망을 잃지 말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협력하여, 조그마한 염소 농장이 카온자 곳곳에 시작 되었으면 좋겠다.
성실한 청지기의 역활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날, 아버지가 큰 일도 주 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준비하는 인생을 우리 같이 살아 가자고...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주실 것을 알기에 우리의 끝은 창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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