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는 한 개인의 영적 여정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탕자는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받아서 타지로 떠나간다. 탕자는 집을 떠나 자신이 갖고 있는 소유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된 삶을 살지 못하고 허랑방탕하게 자신의 재물을 탕진하였다. 그리고 그는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도 흉년이 들어서 먹기기 어려워졌다. 자신에게 다가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었고, 그를 아직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둘째 아들이 되돌아 올 것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통해서 표현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돌이켰다. 그는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고백은 한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는 전환점의 역할을 한다. 고백을 한다는 것은 고백하는 대상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이다. 서로 가로 막혔던 장애물이 제거되는 시작을 알리는 것이 고백이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회개이다. 하나님과 가로 막혔던 장애물인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첫번째 행동은 고백이다. 하나님과 자신에게 고백하는 것은 중독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자신과 하나님에게 고백했다고 하지만 그 고백은 객관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고백할 때에 비로서 고백이 내용이 드러나게 된다. 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간증의 형식으로 고백하는 것은 회복의 길로 들어서는 결단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고백은 영적으로 안내하는 자에게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데 있다.
비지니스 현장에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하리의 창'이 있다. 조하리의 창은 네가의 창으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창은 나도 알도 남도 아는 창이다. 두번째 창은 나는 아는데 남은 알지 못하는 창이다. 세번째 창은 나는 알지 못하는데 남은 아는 창이다. 그리고 마지막 창은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창이다. 마지막 네 번째 창을 영적인 창이라고 한다.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창의 영역이 좁아질수록 보다 성숙해 지는 것이다.
네 번째 창이 넓어지기 위해서는 두번째 창과, 세번째 창이 넓어질수록 네번째 창이 좁아진다. 두번째 창이 넓어지기 위해서, 즉 나는 아는데 남이 모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자신을 남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남은 아는데 내가 모르는 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고백과 경청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상대방의 말을 깊이 들을 수 있으려면, 자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으로 필터링하기 때문이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영적리더에게 자신을 고백할 때에 영적인 안내자는 비로서 중독자의 회복을 위한 안내가 시작된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로 막혀 있는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의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중독은 영적은 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만이 중독을 치유할 수 있다. 하나님과 가로막혀 있는 장애물은 중독자의 내면에 있는 '성격적 결함'이라고 빌 윌슨은 말한다. 성격적 결함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살아온 삶의 방식을 말한다. 결국 중독의 치유는 자신의 의지로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하나님의 의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우리의 내면에 있는 성격적 결함을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하는 중독자의 고백은 곧 회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