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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신교는 연옥을 부정하는가?
홍삼열 목사  
2019-09-05 04:10:57   조회 : 71

마태복음 12장에는 귀신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고치시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그런 기적을 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누구든지 성령을 거역하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귀신의 일로 몰아붙이는 바리새인들의 행위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이 말씀을 연옥(煉獄, purgatory)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구절로 받아들인다.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논한다는 것 그 자체가 “오는 세상”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어떤 죄가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하에 가톨릭신학자들은 치명적인 죄(mortal sin)와 사소한 죄(venial sin)를 구별하면서, 치명적인 죄는 절대 용서받을 가능성이 없으나 사소한 죄는 지은 사람이 회개할 기회없이 갑자기 죽은 경우에 “오는 세상”에서 즉 연옥에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은 자연스럽지 못한 해석이다. 가톨릭교회의 신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없는 의미를 억지로 짜낸 것이다.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은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 할아버지가 와서 빌어도, 당신 고조할아버지가 와서 빌어도 절대 용서 못해!” 라고 말한다면, 이 논법은 그 사람의 할아버지나 고조할아버지의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왜 이런 식으로 억지해석을 하면서까지 연옥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연옥의 교리가 가톨릭교회의 일곱성사 중 하나인 고해성사(告解聖事, penance)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즉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하고 (죄값은 대개 사제가 고해성사를 통해 정해준다) 죄값을 치를 때 생겨나는 공적(功績, merit)이 있어야 죄사함도 받고 천국에도 갈 수 있다는 이른바 보속(補贖, satisfaction)의 교리를 이 연옥의 교리가 보충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옥(purgatory)이란 단어는 원래 purga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화의 장소”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게 될 때 미처 죄값을 치르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연옥이라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용서받지 못한 연고로 천국에 그냥 받아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지옥에 갈 만큼 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냥 지옥으로 보낼 수도 없고, 그래서 천국에 들여보내기 전에 연옥에서 일정기간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연옥에 들어간 사람은 100% 천국으로 간다고 보아야 한다. 각자의 죄질에 따라 어떤 사람은 긴 정화의 과정을 거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그 과정을 끝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연옥에 있는 모두가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때 현세에 사는 사람이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 미사를 올려주거나, 기도를 드려주거나, 순례를 떠나거나, 그 사람 이름으로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를 사주면 이 과정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개신교회는 연옥의 교리를 부정한다. 이 연옥의 교리가 어떤 점에서 비성서적이고 비기독교적인지 두 가지 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연옥의 교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서의 진리에 위배된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가톨릭교회는 연옥이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죄를 지었으면 죄값을 치러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생겨나는 공적이 없으면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가르침은 사람이 선한 행위로 구원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절대로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것인데(로마서 3장 23절),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을 만큼의 충분한 선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용서받는 것이 스스로 죄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이고,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선행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의 옷을 덧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갈라디아서 3장 27절) 따라서 죄값을 치러야 용서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옥의 교리는 비성서적이고 비기독교적이다.

둘째로, 연옥의 교리는 잉여의 공적(surplus merit)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거부되어야 한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적이 필요한데, 우리에게 공적이 조금 모자라면 다른 사람이 쓰고 남은 공적을 빌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공적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일반 사람들도 잉여의 공적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렇게 해서 모아진 공적은 소위 “공적의 창고”에 저장되어서 교황이 지정하는 사람에게로 전달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신념에 기초하여 종교개혁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주고 면죄부를 구입하였다. 면죄부 판매 수익금은 교황청 금고에 들어가서 꼭 필요한 일에 사용될 것이고, 면죄부를 구입한 사람에게는 이 헌금이 공적이 되어 “공적의 창고”에 임시 저장되었다가 현재 연옥에서 불의 단련을 받고 있는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로 전달되어서 그들이 보다 빨리 천국으로 들어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상식으로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이다. 과연 우리에게 “남아도는 공적”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그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데, 어찌 나에게 남아도는 공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공적을 자기를 위해 써도 모자랄 판에 남을 위해 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신앙인이 용서를 받았다 해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용서받은 신자는 “완전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개과천선하고 거룩하게 되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절대 천국 가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신자의 선행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아도는 공적이 있을 리 없고, 남아도는 공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연옥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잉여의 공적이란 개념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연옥의 교리와 함께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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